일상의 소중함
일상의 소중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8.0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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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살다보면 누구나 마주치는 진부한 화두(話頭)가 아닐 수 없지만, 이 물음에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나이에 따라 형편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그러나 소중한 것은 결코 멀리서 찾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자신의 지근거리에 숨어있는 것을 모르고 무작정 먼 곳에서 찾아 헤맨다. 소중한 것은 높은 출세도, 벼락부자도 아니다. 때론 구질구질하고 따분하지만, 언제나 나와 함께 존재하는 일상(日常)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의 관건이다. 탕(唐)의 시인 뚜푸(杜甫)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평생을 벼슬을 찾아 떠돌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잠시 쓰촨(四川)성 청뚜(成都)에 초당(草堂)을 짓고 잠시나마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절실히 깨달은 듯하다.

강마을(江村)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 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품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 긴 여름, 강 마을엔 모든 일이 멈춘 듯하네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 제멋대로 갔다 제멋대로 오는 초당 위의 제비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 서로 허물없고 서로 가까이하는 물 속의 갈매기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 어린 아이는 바늘 두들겨 낚시바늘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 병 많은 사람인지라 필요한 건 오직 약초뿐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 하찮은 이 몸 이것 외에 무엇을 더 찾을까?

시의 언사(言辭)는 결국 시인의 심사(心事)일 수밖에 없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 강물이 맑을 리 없지만 마음이 홀가분한 시인의 눈에는 흙탕물조차도 맑게 보인다. 그리고 마음이 푸근한 시인에게는 사납게 흐르는 강물도 마치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강물이 마을을 품는다(抱村)고 했을까? 해가 긴 여름(長夏)은 음력 유월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삼복(三伏)이라 불리는 무더운 때이다. 짜증나고 지치기 쉬운 삼복(三伏) 더위도 시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위에 멈춘 일손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보잘 것 없는 초당(草堂)이지만 시인에게는 자유롭기 그지없는 절대 공간이다. 제비의 자유로운 왕래가 시인의 심사를 대변한다. 마을을 품고 흐르는 강물 또한 정겨움의 공간이다. 한데 어우러진 갈매기의 모습은 정겹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마당 풍경은 어떠한가?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는 늙은 아내, 바늘을 두들겨 낚시 바늘을 만드는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세상에 더 바랄 게 없다. 그저 바라는 것은 병든 몸이니 약이 될 만한 물건 정도이다. 돈도 명예도 더 이상 바랄 게 못됨을 시인은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 시를 관통하는 것은 일상(日常)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이다. 마을을 안고 흐르는 강물, 제비가 내왕하는 찌그러진 초가집, 갈매기가 노니는 물가 어느 것 하나 귀할 게 없지만, 시인에게 이들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값이 나가고 진귀한 것이 소중한 게 아니라, 일상(日常)으로 만나는 것들이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인은 수십년 세월을 돌고 돌아서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전 같으면 구차하게 생각되었던 누추한 아내와 자식도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로 바뀌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순간, 주변이 온통 보물단지였음을 깨달은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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