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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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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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노조'라고 탓하기 전에
김남균 민주노총충북본부사무처장

어마어마하게 산골에서 살았던 나에게 장맛비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산골마을은 자연적 특성상 비가 내린다 싶을쯤이면 그새 물이 불어나서 신작로를 순식간에 삼켜버리고, 이런식으로 길이 끊기면 학교에 안가도 되는 그런정도에서 장맛비가 좋았었다.

그러다가 다리라도 끊길라치면 이건 완전히 횡재수였다. 그러나 지금, 그 장맛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어릴적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에 대해서 안다. 이번 폭우가 쓸고 난 자리의 재해방송에 연방 물에 잠긴 고향동네가 나오고, 아직도 그 터전에 살고 있는 형제 누이들이 떠올려지고, 그들의 상실감에 대해서 어렴풋이 짐작도 간다.

폭우가 쏟아질 그 무렵, 포항의 ('노가다'로 불리우는) 건설노동자 3000여명이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나는 폭우가 점점 심해질수록 이들에게 닥칠 여러 상황들이 직감적으로 스쳐지나갔다. 나의 직감은 '역시나'였다.

어제부터인가 드디어 하나둘 직감이 맞아들기 시작했다. '이 물난리에 웬 파업', '한편에선 물난리, 한쪽에선 총파업, 포항시민 분통 터져' 등 물난리와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을 겹쳐서 비난하는 문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의 눈에 비쳐진 포항 건설노동자들은 한결같이 '고약한' 사람들이다. 온 국민이 유례 없는 수해에 고통을 겪고 있는데, 혼자만 살겠다고 파업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폭력을 일삼는 철부지로만 치부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몇 년전엔 "이 가뭄에 웬 파업"이냐고 대대적으로 몰아친적도 있다. 도대체 자연현상과 노동자들의 파업이 뭔 상관관계가 있는가. 파업이 비를 부르거나 혹은 비를 도망가게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언론은 한 번도 고약한 노조라고 공격하기 이전에 이들이 왜 고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는다.

혹시 독자들중에서 건설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를 왜 점거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재작년에 한국의 한 외국계회사 CEO 생활을 마치고 떠나던 한 외국인 CEO는 "고약한 노조는 고약한 경영진이 만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말은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해 평해달라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한번만 돌아보자! 50대 전후의 늙은 건설노동자들이 뭔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 끼니 굶으며 자식같은 전경과 맞서고 거기에 있겠는가. 이들의 고약함에 대해 알고보면 그 보다 더한 고약함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 덧붙이자. '화염방사기, 끓는 물' 등 이런 표현으로 건설노동자들의 폭력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금 경찰 방패에 찍혀 동국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건설노동자도 있다.

또 하나만 덧붙이자. 6·25전쟁기간에도 파업은 일어났다. 그렇다고 당시 서슬퍼런 이승만 정권이 이들의 생명을 위해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전쟁시에도 유보될 수 없는 헌법적 권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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