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임보
가시연은 맷방석 같은 넓은 잎을 못 위에 띄우고
그 밑에 매달려 산다
잎이 집이며, 옷이며, 방패며 또한 문이다
저 연못 속의 운수행각, 유유자적의 떠돌이
그러나 허약한 놈이라고 그를 깔봐서는 안 된다
그를 잘못 건드렸다간
잎과 줄기에 감춰둔 사나운 가시에 찔려
한 보름쯤 앓게 되리라
그가 얼마나 매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는
꽃을 피울 때 보면 안다
자신의 육신인 두터운 잎을 스스로 찢어
창으로 뚫고 올라온 저 가시투성이의 꽃대,
그 끝에 매달린 눈 시린 보라색, 등대의 불빛
누구의 길을 밝히려
굳은 성문을 열고
저리도 아프게 내다보는가
* 뜨거움 속에도 곱게 단장하고 여름을 맞는 여인이 있습니다. 연꽃입니다. 하지만 가시연꽃은 여느 여인네와 다릅니다. 너른 잎을 멧방석처럼 물 위에 띄우고 가시를 잔뜩 달아놓습니다. 자줏빛 꽃도 줄기마다 빼곡히 가시를 단 틈새로 얼굴을 내밉니다. 단단히 무장하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겪어보지도 않은 아주 먼 아픈 역사와 마주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가시연은 더 시리게 아름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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