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인간이 걸어서 빛을 낸다
길은 인간이 걸어서 빛을 낸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시인>
  • 승인 2012.07.3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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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시인>

사람들이 길을 걷는 이유는 그때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 걷는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걷는 것이 운동이라서 심장병, 당뇨병, 골다공증, 비만을 예방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산길을, 누군가는 호숫가를, 누군가는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걷기운동은 승패나 순위를 정하는 운동이 아니라서 하늘을 보고, 과수원도 보고, 강물을 보고, 자기 내면을 만난다. 함께 걷는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렇듯 멀거나 가깝거나 아름다운 길을 걷는 모임은 또 얼마나 많은가.

벌써 4년 전이다. 모임에서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다 함께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시내에서 차로 출발해 20분 정도 걸렸을까. 도착한 일행은 모두 "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갈대 군락지의 넓은 풍광이 굽이치는 흰 물결로 우리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일행을 비추이는 물웅덩이, 건너뛰는 도랑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모처럼 맘껏 웃고 소리치던 그날, 일행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뒷걸음을 갈대밭에 들이는 순간, 튀어나가던 커다란 고라니 2마리. 천연의 비경인 갈대밭은 도시의 각박한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그 해 비내섬은 충주시의 '아름다움 풍경길' 중 하나인 비내길이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였다. 충주시가 앙성온천광장에서부터 하천제방과 남한강변을 따라 총 17km에 이르는 산책로를 만든 것이다.

비내길을 걸으면 얻는 것이 많다. 원앙, 고니 서식지인 철새 도래지에서 다양한 새들을 만날 수 있고, 갈대군락지를 걸을 수 있고, 통나무길이나 과수원 길을 걷다가, 희망의 솟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국내 유일의 앙성탄산온천에서 땀을 씻을 수도 있고, 4대강 자전거길과 연계해 있으니,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달릴 수도 있다.

충주의 비내길 이전에 가장 많은 걷기 열풍을 몰고 온 길이 제주 올레길이다. 2007년 9월 개장된 이후, 방문객이 첫해 3000명 방문으로 시작해 2008년 3만 명으로 늘어나더니 2009년 29만 명, 2011년은 109만 명, 무서운 속도로 방문객을 늘였다. 올해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 상반기에만 60만 명이 제주도 올레길을 찾았다니 놀랍다. 하지만 사건이후 제 1코스의 올레길은 잠정적으로 폐쇄됐고, 올레길 열풍에 힘입어 만들어진 전국의 산책로들이, 일시 한겨울 얼음길이 되어 방문객들 발걸음을 주저케 한다.

걷기 열풍으로 시작된 전국 산책로 안전 비상. 문제점을 점검해야 할 시기다. 길 입구에는 안전수칙을 광고 문구처럼 적어 놓아야 하고, 방문자는 이를 지켜야 한다. 혼자 걷기 전에는 지인들에게 수시로 위치와 안전여부를 전화로 알려줘야 한다. 관리센터는 걷는 시간을 정해 놓고, 예를 들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여름기준) 그 시간만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직립을 하면서 시작된 인간의 자유. 잘 닦인 길은 문명의 바퀴들에게 몽땅 내어주고, 때때로 자연 속 서정의 길에서 만나는 명상이나 휴식마저 포기해야 한다면 살아있는 우리들 삶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걸으면서 느끼는 자유는, 걸으면 뇌가 건강해진다는 어느 학자의 주장만큼 신빙성이 있다.

인간은 걸어야 한다. 모든 길은 인간의 흔적위에서 가장 빛난다. 길을 포기 할 수 없는 인간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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