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
소꿉놀이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2.07.3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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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오전 열시가 채 못 된 시각, 나는 어느 새 커피를 열 잔도 넘게 마셨다. 아마 저녁 때 쯤이면 스무 잔이 넘도록 커피를 마실지도 모른다. 평소에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지만 20 개월 된 손녀가 사랑을 듬뿍 넣은 가짜 커피와 소꿉놀이용 모형 과일을 온종일 마시고 먹으면서 나는 무척 행복하다.

아직 기저귀를 차 불쑥 내민 엉덩이를 흔들며 접시까지 받치고 행여 쏟아질세라 조심조심 걸으며 까만 눈으로 마시라는 시늉을 하면 나는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아기 뺨에 뽀뽀를 해준다. 그러면 고마워함을 알았다는 듯 아기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41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손자 손녀를 돌보고 있다. 친구들이 그 동안 직장생활로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할 때마다 자유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두 녀석들 재롱에 힘든 것을 잊고 지낸다.

이제 정이 들어 하루만 보지 않아도 두 녀석들이 눈에 선하다. 새처럼 귀여운 입으로 오물오물 밥을 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무럭무럭 커가며 온갖 재롱을 부리는 세 살 예솔이와, 먹을 것이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입에 먼저 넣어주는 여섯 살 찬솔이의 의젓한 모습에 우리 부부는 흐뭇한 웃음을 짓고, 외출해서 돌아올 때 환호성을 지르며 쫓아 나와 안길 때, 나는 세상의 할머니들 중 가장 귀한 손자손녀를 둔 기쁨을 누린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정작 내 아이들을 키울 땐 직장생활에 시달리고 가정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느라 지치고 힘들어 이런 즐거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아이들 낳을 때마다 한 달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육아휴직은 엄두도 못냈다.

지금은 3개월의 산전 산후 휴가도 있고 육아휴직도 장기간 할 수 있어 전 보다 사정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기 낳기를 기피하고 있다. 아기를 키워보니 옛날보다 더욱 힘이 든다. 옛날 아기들과 달리 키우기가 까다롭고 병원출입도 잦으며 학원보내기 열풍으로 교육에 드는 돈이 상당하니 기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인력은 국력일진대 아기 낳기를 권장하기보다는 양육과 보육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부담을 덜어주는 획기적인 정부의 대책이 절실한 것 같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많이 늘어났지만 가끔씩 불미스러운 일로 여전히 워킹 맘들은 아이들을 맡기기가 불안하다. 정부에서는 엄마의 직장 내에 보육시설을 대폭 늘려 엄마가 안심하고 직장 일을 할 수 있고,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 자녀와 돈독한 정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이른 아침 아직 기저귀를 찬 아기들이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기가 측은해 보인다.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하는 즐거움도 느끼고 사회성도 길러지는 좋은 점도 있겠지만 엄마 가슴을 더듬으며 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기들에게 규율 속에서 힘들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 번쯤 해보고 너무 어린 아기들은 엄마가 키울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 주는 게 가장 좋은 육아정책이 아닐까?

친구들처럼 등산도 다니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지만 직장에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기 위해 예솔이와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육아 지식과 정성을 다하여 아기가 행복하도록 돌보아줄 생각이다.

◈ 필진소개

한국문인 신인상수상, 수필집『 숨어서 피는 꽃』출간, 한국문인회원, 충북수필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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