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화가 미생물
그림을 그리는 화가 미생물
  •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2.07.23 2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생물들은 열대지방이나 남북극은 물론이고 높은 산이나 깊은 바닷속, 사막 같은 나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때는 같은 생물이 다른 환경에 적응하여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다른 생물로 변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미생물도 환경에 따라서 모양이나 색깔이 바뀔까요? 당연히 미생물도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자라는 양상이 달라집니다. 미생물이 자라는 모습을 조사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려는 과학자들이 있는데, 이스라엘의 에셀 벤 야콥(Eshel Ben-Jacob) 박사의 연구는 예술창작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미생물에게도 집단행동을 하는 사회적 지식(Social intelligence)이 있다고 주장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미생물들은 자라면서 가을 하늘을 수놓는 철새들의 군무처럼 집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의 자취를 모으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미생물이 먹고자라는 영양분을 한천과 함께 끓이면 고체의 미생물 배지를 만들 수 있는데, 이 고체 배지에서 미생물들은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가지 그림을 그리면서 자랍니다.

그림을 그리는 형태로 자라는 대표적인 미생물들은 바실루스, 페니바실루스 계통이며, 제일 하단 왼쪽에 나타난 것처럼 버섯 형태로 자라는 믹소코쿠스라는 미생물도 있습니다. 미생물이 자라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 양상입니다. 나무줄기처럼 굵게 자라서 마치 붓에 물감을 듬뿍 찍어 진하게 그림을 그린 것 같은 형태와,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휘감듯이 자라는 나선 형태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같은 미생물의 경우에도 어떤 때는 나선형으로 자라고 어떤 때는 줄기형으로 자랍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먹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먹이가 많지 않을 때 미생물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건실하게 자라기 때문에 튼튼한 모양의 줄기형으로 자라지요. 하지만 충분한 영양분을 발견했을 때는 가족을 늘이기 위해서 빨리 자라 많은 아들딸을 낳습니다.

이때는 영양분을 빨리 얻고자 휘감아 가듯이 나선형으로 자라서 넓은 영토를 얻습니다. 휘감듯이 자라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미생물들은 미끈미끈한 액체를 뿌려서 미끄러지듯이 자라 나선형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여 영토를 넓히는 것처럼 미생물들도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여 더 많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빠르게 움직입니다. 전쟁에서 기동력이 중요하듯이 미생물도 좀 더 빨리 움직이는 방법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방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미끈미끈한 액체는 스키장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여 먹이에 빨리 접근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처럼 미생물들도 빨리 움직이려는 의지를 가지고,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행동한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미생물이 동시에 미끄러운 액체를 뿌려서 먹이에 빨리 접근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생물의 집단현상도 신기하지만, 미생물이 그린 그림은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만큼 가슴에 와 닿습니다. 미생물들의 생존 본능과 살아남기 위한 끈질긴 삶의 노력이 녹아 있기 때문이지요.

미생물의 삶이 철학이 담긴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미생물을 화가라고 표현하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생물이 그린 여러 가지 그림을 새로운 디자인이나 무늬를 만드는 데 활용하여 생활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