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기행
백두산 기행
  • 혜성스님 <진천 자재암 주지>
  • 승인 2012.07.23 2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혜성스님 <진천 자재암 주지>

사중에 일도 바쁘지만 여름철 농사일에다 하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단 하루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처지임에도 지인들의 권유로 뜻하지 않게 백두산 탐방 4박6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됐다.

평상의 하던 일손을 멈추고 만사를 접어두고 보살과 함께 16인이 한 팀을 구성한 일행들과 함께 지난 7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행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심야의 비행기를 타고 연변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첫째날은 연길시에서 가까운 모아산 솔밭공원을 오르는 가벼운 일정을 마쳤다.

서파(서쪽)로 백두산을 오르는 일정이 있는 둘째 날, 설레이는 마음에 습관처럼 새벽4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정좌해 동녘하늘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노라니 붉은 태양의 둥근 원안으로 꽉 차게 용용자(龍)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백두산하면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정상에 오르려면 험순한 절벽과 기압기석으로 이뤄졌으리라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주차장에서부터 정상까지 1450여 계단을 밟고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펼쳐지는 백두산 천지의 푸른물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동행한 일행들 모두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주어 담느라 정신이 없다. 정상에서의 짧은 추억을 뒤로하고 하산을 하려하니 어느새 바람과 함께 몰려온 검은 구름사이로 소나기가 내린다. 일행들은 저마다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어린아이들처럼 추억에 빠져있었다.

삼일째는 북파(북쪽)로 백두산을 올랐다.

전날의 코스보다는 다소 높고 가파른 지역으로 중간 착지에서 짚차 또는 봉고차로 옮겨타고 정상 가까이까지 이동해야 한다. 해발 2740m의 정상 눈앞에 둔 2500m가 넘는 곳까지 차가 오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상의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흰 구름 조각의 환대를 받으며 불과 10여분을 오르니 서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와 다른 더 크고 넓은 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광대한 호수, 맞은편에는 북한군들이 케이블카를 설치해놓고 호수면까지 내려와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행 중 한명이 소주 1병을 가져왔는데 잔을 올려도 되느냐 묻기에 좋은일 이라며 함께 잔을 올리고 참배를 했다.

천지를 굽어보는 일행들은 "대복이 터졌다"며 환호를 보내고 장백폭포를 경유해 백두산 장관을 둘러보고 하산을 하니 어떤이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단다.

마지막 코스는 두만강을 탐방하는 날. 민족의 아픈 상처를 보는 날이라서 인지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린다. 현지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찾아간 두만강은 푸른물이 아닌 흙탕물로 변해 있고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북쪽의 개발사업이 한창임을 알 수 있었다.

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들면서 잠시 사념에 잠기노라니 옛 우리 조상들은 여기 드넓은 만주벌판을 넘어 중국의 중심부까지 영역을 넓이고 대륙을 호령하던 기개있는 민족이였다. 오늘날 우리는 좁은 영토나마 분단의 상처를 앓은채 70년이 가까운 세월을 보내는 동안 중국에서는 아리랑이 자신들의 문화유산이라는 억지 주장과 함께 선조들이 남긴 갖가지 문화유적을 자신들이 만든 역사라며 왜곡된 주장을 정당화 하려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한 구석이 서글퍼진다.

근래에 국력의 신장을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의 찬란한 문화역사를 잘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학계와 정·관계의 적극적인 대응 노력은 어디쯤 가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면 나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졸지에 뜻하지 않은 백두산 기행은 나로 하여금 해야될 무거운 짐이 더 있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우리의 역사관과 민족관이 바로 적립되어야 할 때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