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하루
백수의 하루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7.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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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옛날 서양의 어떤 나라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이 부자는 수만 마리의 양을 키우는 아주 넓은 목장을 갖고 있었는데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목장 주변에 많은 늑대들이 살고 있어 매일 아침이면 여러 마리의 양들이 늑대에게 물려 죽었다.

생각다 못해 부자는 전국에 있는 포수들을 불러 목장주변 사방 10리 안팎의 늑대들을 모두 죽여 없엤다. 얼마를 지난 후 늑대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양들이 예전보다 얼마나 많이 불어나고 살이 쪄 있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늑대에게 잡아먹힐 근심 걱정없는 양들이 살이 쪄 있기는커녕 모두 비실비실 하고 털은 다 빠지고 아주 볼품없게 되어 있었다.

늑대에게 잡아먹힐 공포로부터 해방된 양들이 긴장이 풀려 나태해지고 게으름을 피우다보니 식욕이 떨어져 제대로 먹지 않고 활동을 않다보니 체력저하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는 자나깨나 온통 근심과 걱정으로 점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남들은 "그만한 자리에 있으면 도장이나 찍고 있으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느냐" 했지만 직장생활이 어디그리 녹녹한가?

조직원은 조직을 위해 누구나 나름의 크고 작은 고뇌를 하며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어쩌다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여 애태울 때는 나도 명퇴나 할까 하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힘들었던 현역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여유로운 은퇴를 맞아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래도 현역시절이 즐거웠고 행복했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랫말처럼 왜 그때 조금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과거의 향수에 젖는다.

퇴직공무원이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인데, 아직도 옛날을 못 잊는 것은 공무원 물이 다 빠지지 못했기 때문인가? 정년을 하여 오롯이 집만 지키다보니 창살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떴건만 갈 곳은 없고 오라는 이도 없고 찾는 이도 없고….

무료하게 며칠 지내며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중요하다라는 진리였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의 동행을 위해 대여섯 친목단체의 회장을 자진하여 맡았다. 그것도 감투라고 쓰고보니 신경쓸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월·수·금요일 오전에는 해발 871m의 용두산 등산을 한다.

또 특별히 취미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화·목요일 오전엔 주민자치센터의 기타교실, 노래교실, 탁구교실 등을 참석하며 새로운 동행을 시작하고 있다. 정말 일주일을 타이트하고 영양가 없이 바쁘게 보낸다.

하지만 허백수의 하루는 오로지 시간을 보내려 이것저것을 찾아 헤매는 것뿐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여 현관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아내가 "여보! 조금 전 카더라뉴스에 어느 백수가 과로사로 쓰러졌다고 하던데 당신도 그렇게 되면 어쩌려고 몸을 혹사 시키세요?"라며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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