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실망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2.07.1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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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얼마 전 모 미술단체의 회원이 와서 자신과 함께 했던 협회회장을 칭찬을 하는데, 그 내용을 가만히 듣다보니 마음이 밝아진다. 협회행사의 일환으로 시내와 읍면동의 벽화 그리기를 했다는데, 회장은 회원들 각자 할애 된 시간계산을 하여 행사비를 공정하게 분배하여 아무도 불만이 없었단다.

또 협회 앞으로 공공기관에서 작품을 구매해 줄 일이 있었는데, 회장은 자신과 사무국장은 책임을 맡은 사람이고 이미 진행된 행사에 직책과 이름을 올렸으니, 기관에서 회원들 작품을 구매토록 극구 양보하였단다.

벽화그리기 행사의 공임을 회원들에게 골고루 분배케 한 것이나, 회원들에게 작품판매의 기회를 제공한 회장의 배려는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치하가 돌아가는 이유는 이렇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단체장이나 그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직책을 이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한다거나 자신 이름 앞으로 공로와 콩고물을 당연시 받아 온 관행 때문이다. 평소에도 겸손한 인상을 주었던 그 회장의 사람됨에 대하여, 그러한 회장의 주관적 원칙이 임기가 끝났음에도 회원들 간 칭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협회가 단합되어 활력이 넘치면서 서로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좋은 단초가 되었다니 얼마나 흐믓한일인가. '병신 차려준 밥도 못 먹는 다'며 흉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회장은 미래의 평가와 가치를 아는 사람이고 흉을 보는 사람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내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내일의 희망을 부르는 사람이고 후자는 미래를 실망으로 초대할 사람이다.

벌써 아득해진 과거, 눈물 나는 청춘시절의 일이다. 공무원 시험을 한 달 남겨놓고 비상금을 털어 학원에 등록했다. 대학은 중도 포기해야 했고, 반드시 합격해야만 막막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80년대 노량진 역 근처는 온통 학원이었고. 나는 안양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3일이 지나자 지하철까지 마중을 나오고, 배웅을 해주고, 수업 중에도 내 얼굴만 쳐다보는, 남학생이 있었다.

나는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그가 싫어서 학원을 쉬는 날이 많았다. 서울에선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고향 어른들의 엄포에 잔뜩 주눅 든 내게 그는 '시험 끝나면 여행가자' 했다. 시험 당일 날, 자가용을 자랑하는 그가 무서워 어렵사리 치르던 시험을 포기하고 그로부터 잠적했다.

그 후로 취직이고 뭐고, 되는 일이 없어지자, 그가 생각났다. 대전에서 행사깨나 하는 부자집 아들, 공주로 만들어 주겠다며 자가용을 굴리던 학원 복학생. 자기 명의 서울집이 있다던 망나니. 말대꾸 없는 내 곁을 따라 다니며 자신의 얘길 들려주던 허황된 유혹이 아쉬웠다. 노력과 상관없이 횡재에 기웃대며 나는, 나에게 깊이 실망했고 반성했다. 그리고 자존감을 팔지 않은 그런 날이 있어서 아직도 부자는 아니지만, 오늘도 내일도 자신에게 떳떳하리라 희망한다.

우리는 실망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통령 측근비리와 최근 19대 국회의 정두언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을 보면서 실망한다. 독도. 동해, 문제 등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지리적 역사적인 안목을 무시한 군사협약이라는 대마급의 악수를 생각했던 일본과의 외교능력에 대하여 실망한다.

한 개인이 본인에게 하는 실망이나 단체 회원이 단체장에게 하는 실망이나 국민이 대표에게 하는 실망은 같은 실망이면서 같은 실망이 아니다.

한 개인이 선택을 잘못하면 한 개인이 실망 할 일이 생긴다. 그리고 단체의 회장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 단체가 실망할 일이 생긴다.

그러나 나라의 대표가 잘못하면 그 때야 말로 국민전체가 실망을 넘어서 불행해 지는 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뽐은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 되어야 희망을 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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