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쇼핑 중
그 여자는 쇼핑 중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07.1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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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아침에 어김없이 홈 쇼핑 방송을 틀었다. 눈을 비비며 리모컨을 찾아 홈쇼핑 채널에 맞춘다.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여자의 음성이 잠을 깨운다.

두 달 전에 유선방송을 설치했다. 그리고 즐겨 보는 게 홈쇼핑방송이다.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히 언니네 집에서 방송을 본 후였다. 우리 집은 나오지 않는 그 채널이 마치 황금알을 낳는 방송인양, 나를 제외한 전 국민이 모두 물건을 싸게 구매할 동안 혼자만 비싼 물건을 사서 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는 했다. TV 앞에 앉아 있는 내게 남편이 유선방송 설치하고 홈쇼핑 방송에서 물건을 사들이는 시기가 대략 석 달이라는데 강희진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판매 전략이다. 우선 방송 배정 시간표만 봐도 제법 합리적인 게, 이른 아침 시간대는 주로 여성복을 판매하고 아침 식사 시간에는 음식과 아이들 학습서에 관한 방송이 나온다. 그 다음 주부들이 저녁준비 할 시간대에도 어김없이 음식방송이 나온다. 하루의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건강보조식품방송을,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간에는 전자제품 방송으로 편성되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 일어나서 뭘 입고 나갈까 머리에 그리며 변변치 못한 옷을 떠올릴 때 쇼호스트가 친절하게도 이 옷이 요즘 유행하는 최신 트렌드이고 합리적인 가격이라 유혹한다. 저녁 찬거리 준비에 고민할 때 보면 영락없이 내노라 하는 음식의 대가가 만들었다는 모종의 음식을 들먹인다. 영양이나 가격을 봐도 이보다 좋은 게 없을 거라고 한참 늘어놓다가 마지막 방송이라고 엄포를 놓으면 전 국민이 다 먹는 음식을 나만 먹어보지 못한 것 같은 군중심리에 빠져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든다.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의 기대감, 개봉 직전의 흥분... 그 짜릿함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통신판매를 이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쇼핑 중독자가 아니다. 아니라고 하는 자체가 모든 중독자의 특징이고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은 호스트의 유혹에도 어지간히 단련되었다.

그나마 이제는 약간 시들해졌다. 요즈음에는 아이 쇼핑(eye shoplng)에 만족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본 게 물건이 아닌 어떤 이념의 쇼핑 같은 것이다. 쇼핑을 하는 것처럼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것을 가장 먼저 골랐을지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폭등할 테고 여간해서 사기가 힘들어질 거라면 쇼핑의 방향을 돌려야하지 않을까?

그럼 건강이나 재물은 어떨까? 이것 또한 거액을 쥐고도 수중에 넣지 못하는 일이 수 없이 발생하고 가격이 폭등해 서민들은 쉽게 쇼핑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 지금보다 행복지수는 더 낮아지지 않을까.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젓는다. 수요공급은 물론 결제까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념쇼핑은 마음자세에 따라 지금 내가 얼마든지 마음껏 쇼핑할 수 있다. 이것이면 됐다.

어쨌거나 쇼핑은 즐거운 일이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휴식시간 반복되는 정치 뉴스가 짜증스러울 때, 드라마의 �!� 결말이 유치해질 때 나긋나긋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다 주겠다고 유혹을 하는 쇼핑호스트의 목소리가 달콤하다. 오늘도 나는 쇼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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