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꽃보러 가자요"
"할머니 꽃보러 가자요"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07.1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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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손녀딸 둘이 현관으로 들어온다. 아들 내외가 건강검진 관계로 주말 오전 시간을 부탁해 남편과 나는 손녀딸을 맞이했다. 큰아이가 다섯 살, 동생이 두 살이다. 제 엄마와 아빠가 떼어놓고 가도 울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난해만해도 큰손녀가 제 동생을 보았을 때 에미와 떨어져 많이 울었는데 그동안 많이 자라 대견했다.

작은 손녀도 오리처럼 걷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제 언니 뒤만 따라다닌다. 큰손녀는 세 돌이 지났어도 아기티를 벗지 못하고 동생과 싸우며 지내기도 한다. 아직 작은애는 '언니', '아빠', '엄마' 이 세 단어 외에는 말을 못하니 몸으로만 말을 한다. 그래도 자매라 둘이 오순도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블록을 가지고 놀더니 지루한지 내 손을 잡아끈다. "할머니 꽃보러 가자요."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다. 아이들 이기는 어른은 없다더니 하는 수 없이 끌려 나갔다. 다리가 불편해서 앉고 일어서는 것이 매우 힘이 들었다.

지난봄에 왔을 때 큰손녀를 작은 뜰로 데리고 나간 적이 있다. 이른 봄이라 연보랏빛 깽깽이와 노란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꽃을 만지면서 이름을 알려 주었더니 아마 그때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꽃달개비 옆에 가서 보라색꽃이 피었다고 이야기 한다. 꽃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꽃 색깔을 말한다. 그리고 이꽃 저꽃 만져보더니 옥상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할머니 집에 와서 돌아다니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옥상에 있는 꽃이름도 물어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옥상이 위험해서 다시 방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그림도 그리고 분무기로 물도 쏘아보다가 네 시간쯤 지나자 제 어미 생각이 났는지 현관문 있는 곳을 갔다 온 뒤에 "언니가 엄마한테 갔다 왔어"라고 제 동생에게 이야기 했다. 보고 싶은 엄마를 그렇게 해서 스스로 자제하는 것 같았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반 아이들은 방학 때면 외가엘 간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번 들으며 지냈다. 그때마다 외가가 없는 내겐 늘 외가와 외삼촌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외할머니는 아들이 없어 우리와 함께 사셨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는 말씀은 없었지만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며 아버지께 미안해 하셨다. 그러나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사랑을 듬쁙받아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품을 갖게 되었다. 삼형제를 데리고 친정에 갈 때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우리 손녀딸들에게 함께 살지는 않지만 가끔 다녀갈 때마다 고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점심때쯤 아들 내외가 도착하자 손녀딸들은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함박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뛰어가 엄마 아빠 품에 안긴다. 그렇게 좋을까?

힘은 들었지만 손녀들로 인해 마음이 맑아진 하루였다.

"할머니 꽃보러 가자요" 손녀딸의 또랑또랑한 소리만 내 귀에 들리는듯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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