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묵묵한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 승인 2012.07.1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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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묵묵히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평생을 사는 사람을 보면 흙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왠지 피해를 보거나 부족해 보이는 세상이다. 묵묵히 란 말 속에는 '돈이 안 되더라도 묵묵히 하는 일, 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되는 세상이다. 너나없이 쉽게 큰 길로 휩쓸려 가는 게 편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일이든 자기가 꿈꾸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훌륭한 이유는 흙을 닮은 데 있는 것 같다.

흙은 거짓이 없다. 콩 심으면 콩을 내고 팥 심으면 팥을 낸다. 흙은 제가 품고 있는 꿈이 무엇이건 겸손하여, 그 뿌리가 아름다운 꽃이건 생명의 곡식이건 하찮은 미물이건 차별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흙이 하는 일이 이처럼 성스럽고 영원하니, 성경 속 하느님도 흙으로 인간을 빚어 당신 입김으로 생명을 만드신 것이며, 제가 태어난 흙을 딛는 이승의 삶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부활의 삶을 살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주에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도자기마을에 갔다. 도심 속 바람과는 확연히 다른 초록바람이 마중을 나오고. 마을입구에 다양한 빛깔을 섞어 만든 2개의 도자기탑이 시선을 당긴다. 여기저저 나란히 놓인 의자들과 탁자들, 탁자들 위엔 팥떡과 연꽃차가 놓이고, 사람은 많지만 분위기는 잔잔하다. 도예 가마에 불을 때는 경건함이 포크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라이브 음악과 충주미술협회 회원들 화합 마당으로 어울리는 판이다.

7080세대의 '눈이 큰아이', '일곱 송이 수선화', '캠프송 메들리' 등 귀에 익은 음악들이 흐르고 사람들은 손뼉을 치면서 여름밤의 열기가 마냥 흥겹다. 마당 한 귀퉁이엔 작은 동산처럼 자리한 가마 속 장작불이 맹렬한 기세로 타고 있다.

흙이 완벽하게 빛나는 도자기로 태어나기까지 20시간 넘도록 1000도 이상으로 불은 타올라야 한단다. 원광도예 이종성 도예가는 푸르스름한 개량한복의 편안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장작불을 지피느라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가마입구를 지키고, 음악이 잠시 멈추자 시낭송이 이어졌다.

꽃 피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흑흑 울음소리 들린다/ 키 크는 나무에 귀 기울이면 흑흑 물 올리는 소리 들린다/ 세상 생명 있는 것들 모두가 흙에 뿌리를 두고 자라나니/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가나니/눈 깊은 도공이 있어 그가 빚은 푸른 찻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섬섬옥수 흙을 빚은 구멍마다 망울망울 도공의 땀방울이 보인다/ 사람아! 사람아, 제 살아 온 절망과 고독의 눈물로 단단한 천년의 그릇을 꿈꾸는 사람아/ 정한수 떠 놓고 가마에 불 지피는 이 밤에/ 스스로 커다란 달 항아리가 되어 온 우주를 밝히는 /마음 맑고 우직하니 흙이 깊은 사람아.

19세에 백자의 대가 호순 안동오 문하생으로 입문한 이종성 도예가는 물레성형, 정형과정 조각과 그림, 유약작업, 초벌, 재벌, 등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을 훌쩍 넘도록 전통방식으로 문화재를 재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공이란 자부심으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는 일상을 살며, 오늘도 전통백자를 재현함에 있어 선조들이 하던 방식으로 소나무장작으로 가마 불을 지피고 있다. 말 수가 적어 무뚝뚝해 보이는 그의 바람은 언젠가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도자기를 재현하여 재현전시관을 짓고 소중한 전통의 맥을 잇는 후진양성을 하는 것이란다.

흙과 불, 바람과 사람의 조화가 어우러진 여름밤은 소나무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 막걸리를 마시면서 사람들에게 낭만을 허락했다. 흥겨운 기타음과 함께 허리가 꺾어지도록 애간장으로 흐르는 섹소폰 소리가 별들을 불러 내리는 밤이었다. 묵묵한 외길 삶으로 전통기법의 명맥을 유지, 전수하려는 도예가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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