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의 추억
압구정의 추억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7.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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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에게 추억이 있듯이, 땅에도 추억이 있다. 잘 알려진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절실히 이를 일깨운다. 뽕나무 밭(桑田)이 푸른 바다(碧海)가 된 것은 자연적 현상이었겠지만, 기계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는 인간의 힘으로도 그 못지않은 땅의 변신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정평이 난 압구정(狎鷗亭)은 땅의 변신은 자유임을 역설하지만, 실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 이름자에서 이 땅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탕(唐)의 시인 왕웨이(王維)의 시는 압구정(狎鷗亭)의 원형을 가늠케 한다.

장마에 왕추안 시골집에서(積雨輞川庄作)

積雨空林煙火遲,(적우공림연화지), 텅 빈 숲 장맛비에, 밥 짓는 연기 느릿한데

蒸藜炊黍餉東淄(증려취서향동치) . 명아주 찌고, 기장밥 지어 동쪽 묵정밭으로 보낸다

漠漠水田飛白鷺(막막수전비백노), 넓은 논에는 백로 날아다니고

陰陰夏木전黃리(음음하목전황리). 울창한 여름 나무에선 꾀꼬리 지저귄다

山中習靜觀朝槿(산중습정관조근), 산속에서 마음 가다듬어 아침 무궁화를 살피고

松下淸齋折露葵(송하청재절노규). 소나무 아래서 재계하여 이슬 머금은 아욱을 꺾는다

野老與人爭席罷(야노여인쟁석파), 시골 늙은이 남들이 피하지 않게 표 없이 살건만

海鷗何事更相疑(해구하사갱상의). 갈매기는 무슨 일로 다시 의심하는가?

연이어 비(積雨)가 내리는 산 속엔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밥 짓는 연기가 느릿느릿 피어오른다. 아궁이에 불 집혀 나물을 삶고 밥을 지어, 묵정밭으로 보내는 모습은 산골에 은거한 시인의 일상(日常)이다. 느릿한 연기는 시인이 직접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욕망과 근심에서 초탈한 시인의 삶의 모습이다. 넓은 논 위를 나는 백로, 울창한 나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들녘으로 마실 나온 시인의 벗들이다. 산 속으로 돌아 온 시인은 무궁화를 살필 때도, 아욱을 꺾을 때도 그의 심신은 고요하고 정갈하다. 삶을 대하는 시인의 경건함이 그려진다.

자신을 시골 늙은이로 한껏 낮춘 시인은 스스로는 남들과 동화된 순순한 삶을 사는 이치를 깨달아, 남을 속이고 꾸민 마음(機心)이 사라졌다고 믿었건만, 누군가 이를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기심(機心) 감별사 바다갈매기(海鷗)이다.

바다나 강이나 가릴 것 없이 큰물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갈매기가 있다. 갈매기는 속세를 떠나 물가에 찾아든 사람을 따라다니며 그와 벗 삼는다.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이와 다름 아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갈매기와 허물없이 가까이 지낸다는 의미의 압구(狎鷗)이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갈매기의 사귐은 까다로운 조건이 있으니, 꾸미고 속이는 마음(機心)을 잊는다는 뜻인 망기(忘機)가 그것이다. 갈매기는 모태 망기(忘機)이니 본디부터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그 파트너인 사람이다. 갈매기는 망기(忘機)의 사람에게만 사귐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사대에 걸쳐 33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기심(機心)의 화신 한명회(韓明澮)가 은퇴마저도 거짓으로 해놓고, 한강 남쪽 기슭에 세운 정자 이름이 바로 압구정(狎鷗亭)이었으니 참으로 언어의 역설(逆說)이 아닐 수 없다. 철저히 세상을 기만하고 자신마저도 속인 한 위인으로 인해 압구정이라는 땅의 추억은 이처럼 씁쓸하다. 없는 것은 없고 있을 것은 다 있는 땅 압구정(狎鷗亭)엔 딱 하나 없는 게 있었으니 기심(機心) 가득한 사람과 사귀기를 마다하여 떠나 간 갈매기가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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