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虛風)의 유쾌함
허풍(虛風)의 유쾌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7.0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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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농사에 논농사 밭농사만 있는 게 아니다. 수택(水澤)의 고장에서는 못농사를 주로 하는데, 이 또한 힘들기는 매양 마찬가지리라. 그러나 여기에 낭만적 체취가 물씬한 것은 주인공들이 여느 농사와는 판이하게, 꽃과 아가씨이기 때문이다.

7, 8월 성하(盛夏), 물이 그득한 드넓은 못은 그야말로 연꽃천지다. 순결과 청정의 꽃, 연꽃의 즐비를 맵시 난 모습으로 누비는 가녀리고 어여쁜 아가씨는 그 자신이 또 한 송이의 연꽃이다. 마치 특급 모델의 화보 촬영 장면 같지만 사실은 못농사의 일상이라는 게 뜻밖이다.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 모양이 같아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느낌이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낌이 아니라 생김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탕(唐)의 시인 왕창링(王昌齡)이다.

○ 연 캐기 노래(采蓮曲)

荷葉羅裙一色裁(하엽라군일색재) : 연잎과 비단 치마는 한 빛깔로 마름질하였고

芙蓉向검兩邊開(부용향검양변개) : 연꽃 그리고 마주한 아가씨 뺨은 양쪽에서 각자 피었네

亂入池中看不見(난입지중간불견) : 못 속에 섞여 들면 가릴 수 없고

聞歌始覺有人來(문가시각유인래) : 노래 소리 듣고서야 사람 온 것 깨닫더라

단한 허풍(虛風)이다. 그러나 시 속의 허풍은 제 자랑을 하거나 남을 속이는, 그렇고 그런 허풍과는 유(類)도 격(格)도 다른 별종이다.

시인은 첫련에서 서서히 허풍을 시동하기 위해, 마름질(裁)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연꽃의 이파리와 연 캐는 아가씨의 비단 치마는, 앙드레김 같은 패션 장인(匠人)이 동일 색조(色調)로 재단(裁斷)하여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는 너스레는 겨우 허풍의 시작에 불과하다. 잎사귀와 치마, 아랫녘에서 꽃과 얼굴, 윗녘으로 진로를 잡으면서 허풍은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

같은 연꽃인데도 연화(蓮花)나 하화(荷花)라 하지 않고 부용(芙蓉)이라고 한 데서 조짐은 보였다.

부용(芙蓉)은 부용(婦容)과 음이 같아서, 연꽃과 여인의 얼굴은 졸지에 하나가 된다.

이제 시인의 눈에서 연 캐는 아가씨는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 보이는 것은 활짝 핀 연꽃 한 송이다. 한쪽엔 연꽃, 다른 한쪽엔 아가씨 얼굴이어야 할 것이 양쪽 모두 연꽃으로 피어 버렸으니, 이쯤에서 시인의 너스레는 이미 중증(重症)이고, 그의 허풍은 이젠 태풍이다.

연이은 너스레에 숨이 가쁜 시인은 잠깐 숨고르기에 나선다. 생김새가 똑같은 것들을 제멋대로 섞어 놓고 가리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라고 하소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숨고르기가 연막이었음은 미구(未久)에 들통 난다. 도리어 허풍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연꽃과 아가씨를 한 연못 속에 무작위로 넣어두면, 눈으로 그 둘을 도저히 가릴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귓속말로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속삭인다. 눈으로는 백날 봐야 소용없으니, 눈감고 귀로 한번 들어보라고.

연 캐기에 나선 아가씨는 그 고됨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바로 이 노랫소리가 연꽃과 아가씨를 구분케 하는 유일한 장치라는 것이다.

시인은 연꽃과 아가씨가 시각(視覺)적으로 완전히 같음을 청각(聽覺)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시인은 노래를 들어서 연꽃과 아가씨를 구분할 수 있다는 데가 아니라, 소리를 들어 보지 않고 생김새만으로는 도저히 그 둘을 분간할 수 없다는 데 방점(傍點)을 확실히 찍었다. 이로써 허풍의 긴 여정(旅程)도 마침내 막을 내렸다.

허풍(虛風)은더 이상 떨지도 치지도 말아야 할 애물단지가 아니다.

화이트 라이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착한 거짓말이라면, 허풍은 사랑하는 존재를 치켜세우는 유쾌한 거짓말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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