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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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7.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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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태풍속에 모든 것이 흔들린다
장마철에 태풍이 겹쳐 온 나라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인명피해가 나고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의 세찬 변화 앞에 사람의 세계는 쉬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천재지변에 잘 대처하지 못한 사람의 재앙으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의 부패와 관료적 무심은 늘 인재를 불러오지만 이 또한 장마건 태풍이건 자연의 천변만화를 무슨 재난쯤으로 우습게 여기려는 문명 우위의 발상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 결과 우리는 사람에게 유리한 것을 자연이라 애써 부른다. 또한 자연과 친화하자면서 입맛에 맞는 자연은 제멋에 겨워 사람의 세계로 끌어들여 모방하고 추종하기까지 한다.

그 정도까지를 자연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테두리에 넣어두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 자연이라 할 수 있을까. 진실을 말하면 그것은 자연 자체이기보다 인간을 투사하여 자연의 진리를 착취, 약탈하는 또 다른 지배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을 인간의 차별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비유로만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자연은 물아일여의 본성 대신 위와 아래, 선과 악, 참과 거짓의 잣대로 떨어진다. 가령 우리는 사람이 가꾸는 풀이 아니면 그것을 잡초라 널리 부른다.

그리고 사람에게 더하여 잡초 인생이라 깔보고 때때로 이 세계에서 뽑혀져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몰아간다. 실제 여름이 되고 풀이 자라는 곳에서는 '잡초'와 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잡초'라고 여겼던 것이 농사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땅에 뿌려준 고마운 먹이라면 어떨까 정갈하게 거두어서 나물도 무쳐 먹고 효소식품으로 바꾸어도 좋을 약이 되는 풀들을, 내 손으로 그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돋아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대시하여 죄다 수고롭게 땀 흘려가며 뽑아서 버렸으니 어리석기도 하다.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땅에서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름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마찬가지로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잡초 인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다시 모든 것이 흔들리는 비바람 속에서 갓길 가드레일 밖에 개망초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백 년 전 외세가 집적댈 즈음에도 온 나라를 하얗게 꽃 피운 그것을 일러 개망초라 했다는 얘기에서 오늘 그것이 아메리카에서 묻어온 귀화식물임이 아프게 비유되는 것은 어떤가. 그래서 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면서 그 너머에 과연 어떤 희망 세상이 펼쳐질지 사뭇 두렵다.

자연과 인간을 나누고, 다시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이러한 분리와 배제의 정교한 과정인 근대화를 거쳐 문명이 다시 스스로 확장하며 경쟁과 효율만을 자유의 이름으로 미화하고 글로벌 잣대라 옹호하며 세계체제에로 흡인하고 있는 오늘. 잠시 비바람이 그친 때 집 주변 숲을 돌아본다. 풀들이 무성하고 꽃도 피고 있다.

더 이상 잡초가 아님을 배운 것으로 그들과 공존할 깜냥은 생겼다고 여기는 순간 그것만으로 자연을 알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만다. 거기서 다시 본 것은 대부분 미국이라는 제국의 접두어가 붙은 것들이다. 미국까마중, 미국나팔꽃, 미국가막사리, 미국미역취에 심지어 미국자리공까지.

금방 비바람이 다시 치고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 속에서 지금 당장 한반도 남북을 협잡하는 제국의 요동에도 마침내 좋은 세상, 자연을 향한 세밀한 떨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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