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하여
노인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하여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2.06.2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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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휴일이다. 문득 홀로 사는 엄마 생각이 나서 친정엘 가니 마당이 딸기밭이 되었다.

자식이 여덟이나 되니 누구든지 들리면 쉽게 입다심이라도 하라고 너른 마당을 딸기밭으로 가꿔 놓은 엄마. 아버님 돌아가시곤 마당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놓으시더니. 오늘 찾아간 친정집 마당엔 해마다 뒤꼍에서 자라던 몇 포기 딸기가 현관 계단 밑까지 펼쳐졌다.

빨갛게 잘 익은 싱싱한 딸기를 몇 개 따먹으며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 여기저기 딸기 그릇이 놓여있다. 노인은 부엌에서 기척을 낸다. 딸이 온다는 전화를 받고 쌀을 씻고 계시는 거다. 평소 밥하기 싫다고 넉넉히 한 탓에 많아진 찬밥을 양푼에 옮겨 놓으시며 딸들에게 줄 따순밥을 하고 계신 거다.

20년 전부터 인공 엉치뼈로 버티는 엄마의 무거운 걸음을 쇼파에 앉혀놓고 밥을 안친다. 창문을 열어 놓고 청소를 한다. 친정집엔 그 옛날 아른아른 달콤했던 엄마냄새 대신 언제부턴가 퀴퀴한 노인의 냄새가 눅눅하게 집을 채우고 있다.

엄마는 고집불통 노인이다. 같은 동네 낙농사업을 하는 아들이 모시고자 하지만 당신이 열아홉에 시집 온 종갓집을 끝까지 지키겠다 하신다. "옛날엔 그렇게 많이들 북적대더니 이렇게 혼자구나. 자주 전화해라. 외롭다. 어떤 날은 종일 말 한마디로 하지 않을 때가 있구나. 자주 오고 자주 전화해라" 가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시면, "이제 그만 오라버니댁으로 가셔요. 효도를 떠나서 이웃들 보기 민망해서라도 엄마 모시겠다고 그리도 원하는데 제발 고집 좀 접으세요."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 "돌아가 조상님들께 할 말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종부가 아니냐. 내가 사는 동안 이 집서 제사 모셔야지. 움직일 수 있는 동안 난 이 집서 살다가 이 집서 죽으련다." 그렇게도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지던 여인이기에 "나이 들어 자식을 따르는 것이 삼종지도(三從之道) 아니냐"며 들이댈라치면 "종부(宗婦)의 도리가 먼저"라며 그때부턴 입을 딱 닫아버리신다.

엄마는 86세지만 일을 좋아하신다. 인공뼈로 20여년 살아온 걸음을 쉽게 떼어놓질 못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팡이를 찾으시곤 일단 목적지까지 가면 서서 윗몸만 움직이거나, 엎드려 무릎으로 일을 하신다. 뒷산에 밤이나 두릅을 포함해서 뒤란에 과실나무나 감이나 온갖 나물 보따리를 부담스럽도록 챙겨주신다.

그런 엄마의 비결은 부지런함과 일을 사랑하는 성품에서 온 건강이며, 스스로 지혜로움으로 지족(知足)을 누리기 때문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지난 15년간 복권당첨으로 백만장자가 된 139명을 추적 조사해 보았더니 약 6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일 년 후에는 다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심리학자들은 그것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조금 행복한 사람은 일이 있는 사람이고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젠 국민 평균 수명이 길어져 30년 정도 일하고 20년 쉬라고 하는 것이라면, 옛날의 장년층이 되어버린 현재의 60대를 부양할 책임과 의무를 정부의 복지로 해결하려 한다면, 개인에게도 정부에게도 손해가 아닌가 싶다.

나부터도 남은 긴 생애 30~40년을 할 일없이 어찌 견디나 걱정을 해야 할테니 말이다.

힘이 달려서 일을 못하는 노인은 없다. 병이 있어서 게을러서 일을 못하는 젊은이들보다 건강한 노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생산인구 감소문제를 단순일자리를 주는 문제나 행복을 주는 노인문제로 짚어보면 어떨까 싶다.

엄마가 오래도록 일하실수 있도록 지금의 건강이 유지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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