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벽을 넘어서
  • 이제현<매괴여중·고 교목신부>
  • 승인 2012.06.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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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매괴여중·고 교목신부>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갈라진 우리 민족의 상처를 기억하게 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날에 즈음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민족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화석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 모습에서 분단의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속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철조망 너머의 이웃들에게 이토록 무관심해도 되는 것일까요 지구 반대편의 갖가지 소식까지 알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의 형제, 자매들의 처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오해하면서 분노와 증오를 키워온 것이 지금 우리의 현 주소입니다.

가수 조pd는 'the wall'이라는 노래에서 갈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습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맨날 우린 우리끼리 싸우지 왜?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닌데. (중략) 냉전은 ending이 오랜데 왠 지금 색깔 논쟁. (중략) 북의 인력 자원, 남의 기술 자본, 합쳐진 시너지는 민족의 염원. (중략) 휴전은 완전 열강들의 작전, 빨리 종전 후 고구려 고려, goal is for the united Korea, 우리의 소원이야. (중략) 벽을 넘어 그 편견의 벽을 넘어, 벽을 넘어 그 병적인 벽을 넘어, 벽을 넘어 그 변명의 벽을 넘어, 벽을 넘어 저 삼팔선을 넘어. (이하 생략)"

요즘 우리는 소위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미덕으로 무한경쟁력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성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특히 외국어, 그중에서도 영어에 매달리는 현상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세계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된 세계화는 외국어를 익히고, 서구 사회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 안에 편입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 사람들과 다투는 경쟁에 있지 않고, 우리 고유의 삶과 문화를 모든 민족들과 나누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곧 세계 시민으로서 연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때 세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고유의 삶과 문화를 회복하는 것, 민족의 일치와 소통을 가로막는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입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나가서도 샌다'는 말처럼 같은 민족끼리 서로 일치와 화해를 이루지 못하면서,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넘어 부활로써 새 생명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북쪽 형제들의 고통을 나눠지는 것은 당장 죽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우의 벽을 넘어, 일치와 화해를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민족의 일치와 화해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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