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25전쟁 미망인의 눈물
어느 6.25전쟁 미망인의 눈물
  • 허부성 <충주보훈지청장>
  • 승인 2012.06.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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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허부성 <충주보훈지청장>

'겨레와 나라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충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님 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 되면 추념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현충일 노래 가사다. 가사 하나하나도 의미심장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마다 나는 25년 전 어느 현충일 추념식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 당시 보훈처에 입사해서 처음 맞는 현충일 추념식이었다. 추념식장 한편에 하얀 한복을 입고 가슴에는 검은색 리본을 단 미망인들이 조용히 일어서서 현충일 노래를 부르며 손수건을 꺼내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조국에 바치고 홀로 살아 온지 30여년, 50대의 미망인들은 그렇게 쌓여 있었던 그리움과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현충일에 한꺼번에 눈물로 씻어내면서 살아 온 것이다.

보훈처에서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한다. 주로 가구별로 방문해서 조사를 하는데, 그 해에 나는 실태조사 직원으로 선발되어 농사를 짓는 미망인 가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미망인의 집에 도착하니 미망인은 밭에서 바로 들어 왔는지 손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급히 손을 씻고 나를 마루에 앉도록 했다. 조사를 다 마친 후 미망인은 방에 들어 가시더니 누런 색 헝겊주머니를 가지고 나와 보여 주었다. 그 주머니 안에는 역시 누렇게 변한 종이가 접혀 있었는데, 그 종이를 펴보니 전사통지서였다. 30여년간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고이 접어서 보관해 오고 있는 것이다. 미망인의 눈은 벌써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이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내 눈에도 역시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 것을 다시 접어서 미망인에게 돌려드렸다. 그 미망인은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결혼까지 다 시켰다. 남편을 가슴에 묻고 그렇게 억척스럽게 30여년을 살아왔다. 그 미망인도 현충일 추념식에 하얀 한복을 입고 참석하여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으리라.

사랑하는 남편은 6.25전쟁 중 어느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우다가 스러져 갔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부모, 아내, 자식, 형제 등을 생각하면서 차마 감지 못할 눈을 감고, 호국의 영령이 되었다.

올해도 현충일 추념식에 다녀왔다. 6.25전쟁 미망인들이 25년 전 모습과 같이 흰색 한복에 머리를 곱게 묶고 추념식장 한 쪽편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이제는 80대에 접어든 고령으로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었고, 몸집은 작아져 있는 것 같았다. 현충일 추념식 마지막에 현충일 노래를 부를 때 무심히 미망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눈길이 돌려졌다. 이제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았는지 손수건을 꺼내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몇 해 있으면 60여년을 기다려온 사랑하는 남편 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60년간 눈물을 흘려 이제는 더 이상 흐를 눈물조차 없이 말라버린 이분들의 아픔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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