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바이러스
꽃 바이러스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06.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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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저녁나절 옥상에서 이웃집을 내려다본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골목 집들은 여러 가지 꽃들로 물들고 있다. 꽃과 더불어 사는 내겐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옮겨가는 직장마다 꽃을 가꾸며 지내니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움을 전해주게 된다.

우리 동네는 살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아파트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 사는 동안 여러 집이 이사를 했다. 올해도 새로 몇 집이 바뀌었다. 우리 집 대문이 열려 있던 날 이들이 집안을 돌아보더니 꽃이 매우 많아 보기 좋다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거의 30년이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미련하게 오래 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뿐이다. 작은 평수의 주택이지만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이 되어 있다.

이 집을 처음 선택하게 된 이유 또한 작은 공간을 뜰로 조성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답답해 보이는지 "왜 아파트로 옮겨가지 않느냐?"라고 얘기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작은 뜰을 열심히 가꾸었다. 야생화를 심느라 꽃집도 여러 곳을 다니고 잔돈푼도 많이 나갔다. 거의 꽃 중독자처럼 인터넷, 식물원, 꽃시장으로 바쁘게 다녔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어도 될 만큼 여분이 생겼다.

앞집 아주머니도 꽃을 좋아해 가진 것들을 나누다 보니 한 집 두 집 꽃을 가꾸기 시작했다. 왠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흡족하다. 우리 집이 아니어도.

오늘은 옆집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열린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마당에 깔린 보도 블록을 드러내고 화단을 만들고 있었다. 자기 집만 너무 삭막한 것 같아서 꽃을 심어보려한다고 했다. 집주인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이야기를 하였다. 이웃집들이 한집 꽃밭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흐뭇했다.

그리고 요즘 달라진 풍경은 그들이 집에 있을 때엔 대문을 열어 놓고 지낸다. 이것도 꽃으로 인해 소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순박하고 솔직하며 속내를 다 드러내고 지낸다. 우리 집은 자주 비어 대문을 걸고 지내기 때문에 그들이 꽃을 보고 싶을 때 못 보아 미안할 때도 있다. 새로 이사와 열심히 꽃밭을 가꾸는 코너 집에 꽃 달개비와 하늘매발톱, 매화 바위솔을 주었더니 얼른 정성껏 말려 두었던 말린 고사리를 꺼내 주셨다. 모처럼 만에 느껴보는 이웃과의 소통의 정이 눈물 나게 감사하고 고마웠다. 정든 고향처럼 그렇게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나는 요즘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소통과 나눔이다. 오늘도 옆집에서 만든 화단에 꽃 범의 고리, 플록스, 미역취, 구절초, 매발톱을 심어주었다. 집에서 가꾼 들꽃들을 나누어 주며 그들의 마음 밭에 행복의 꽃밭을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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