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강자의 여유
자전거와 강자의 여유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6.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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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니다보면 차들이 위협적으로 대드는 경우를 본다. 옳은 일일까?

나도 법규는 잘 모른다. 최근에 들어본 것으로는, 자전거도 차로 분류된다는 것. 따라서, 차와 동일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가는 방향도 자동차와 한 방향이어야지, 거꾸로 가다간 역주행이 된다고 한다. 만약에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횡단보도도 내려서 건너가야 한단다. 사람이 물건을 끌고 인도를 건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법규는 대체로 전세계적이어서 외국생활을 할 사람들에게는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차가 자전거를 치였는데도 역방향이라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한 사람에게는 너무 억울하겠지만 자전거가 차라는 원칙에서 자전거가 중앙선을 넘어 다닌 꼴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법규가 없지만, 독일은 자전거도 음주운전검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자전거가 차라는 생각은 많이 하지 않는다. 자전거 도로도 인도와 함께 있으니 그저 걷는 것보다는 빠른 이동수단 정도로 생각한다.

때로 자전거가 대로로 나와서 달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차와 자전거 사이에 무슨 상식이나 협약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차는 자전거를 겁주고, 자전거는 '그래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극단적인 형태가 현실이다. 자전거를 타고 좌회전을 하려들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도로 가서 신호를 기다려서 건너는 것이 상책인 듯싶다.

국가적으로도 자전거를 타자면서, 자전거도로도 만들면서, 우리 사이에는 공통된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차만 타기만 하면 흉폭하게 변하는 지킬과 하이드 운전자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걸을 때와 차를 몰 때가 너무 다른 사람을 본다.

사실 교통법규라는 것이 별 게 아니다. 자기 걸을 때를 생각하고 차를 몰면 된다. 그런데 우리 인식이라는 것이 단순하기 그지없어, 걸을 때는 차 몰 때 생각을 못하고, 차를 몰 때는 걸을 때 생각을 못한다. '왜 빨리 안 가고 있어'라는 표현은 늘 상대방에게만 해당된다. 스스로에게 누리라던 '천천히'의 느낌은 남이 '천천히'할 때 곧 사라진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누가 힘이 세냐?'고 물어야 한다. 여기서 힘의 셈은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이냐는 물음이다. 자동차를 사람이 이길 수 없다. 자동차로 사람을 친다고 해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 사람이 자동차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자동차는 철갑을 두른 채 보행자를 공격하지만, 사람은 무장 해제된 무방비 상태다. 그렇다면 자동차가 강자임은 분명해진다.

자 여기서 물어보자. 강자는 약자를 공격해야 하는가?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를 생각해보았는가? 아무런 무기도 없는 가냘픈 사람을 말이다.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하지만, 힘없는 쪽을 그렇게 공격하는 것은 강자로서 창피하지 않은가? 결국 정신적으로 박약한 사람이 자동차를 뒤집어쓰고 공격하는 것밖에 되지 않겠는가? 이른바 '여우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꼴'(狐假虎威)이다.

그래서 내가 강조하는 것이 '강자의 여유'이다. 자동차와 자전거 사이에서는 자동차가 강자다. 그래서 자동차가 자전거를 피해야 한다. 자전거와 사람 사이에서는 자전거가 강자다. 그래서 자전거가 사람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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