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과 귀농 사이
전원생활과 귀농 사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6.0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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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58년 개띠로 대변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봇물을 이루면서 귀농 인구도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요즘의 귀농은 여유로움을 즐기고자 하는 전원생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귀농은 도시의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재취업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고, 삶의 취향이 전원인 사람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은 일반적인 귀농은 아니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농사를 지어 생계를 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삶을 즐기는 경우가 그것이다.

참으로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이러한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될 터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405년에 귀농을 감행한 타오이앤밍(陶淵明)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41세였고 직책은 펑쩌(彭澤)현 태수였다. 타오이앤밍(陶淵明)이 귀농을 한 계기는 정년퇴임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윗사람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관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서 귀농을 감행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자기 고향의 묵은 땅을 손수 개간해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할 작정으로 귀농을 했으니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다.

그의 연작시(連作詩) 귀원전거(歸園田居)는 그의 귀농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 세 번째 시를 보자.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 남산 아래에 콩 심었는데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 풀은 무성하고 콩 싹은 드물다

晨興理荒穢(신흥리황예) : 새벽에 일어나 잡초 묵은 땅 일구다가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 달을 대동한 채 호미를 어깨에 둘러메고 돌아온다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 길은 좁고 풀과 나무는 웃자라 있어

夕露沾我衣(석로첨아의) :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적신다

衣沾不足惜(의첨불족석) : 옷 젖는 것 좋기야 하겠냐마는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 다만 천성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바라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야

중국문학에서 타오이앤밍(陶淵明)은 전원시(田園詩)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풍광이 수려한 전원에서 유유자적하며 풍월이나 읊으면서 산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이라는 것을 위의 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시인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어린 자식들이 방에 그득했고 독엔 곡식이 쌓인 게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무책임한 가장은 아니었다. 변변한 밭 한때기 없던 시인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멀리 남산 자락에 임자 없는 묵은 땅을 손수 개간하여 농토를 일구어야 했다. 오랜 세월 묵혀 있던 땅이라 잡초는 우거질 대로 우거졌을 테고, 산자락의 땅이니 돌멩이에 치여 삽도 안 들어가는 땅을 호미로 일구어 겨우 콩을 심은 것이리라. 그런데 야속하게도 콩 싹은 잘 나지 않고 금방 잡초가 무성해지니 농부의 수고로움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귀농의 고단함이 선명하게 보인다.

달이 뜰 정도로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하고, 달을 벗 삼아 집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행복감은 고된 노동에 대한 대가이다. 그러나 달밤의 귀로 또한 만만치 않다. 사람의 왕래가 없던 터라 좁디좁은 데다 웬 풀과 나무는 그리도 웃자랐는지. 그 위에 내려앉은 이슬에 옷이 흠뻑 젖을 지경이다. 자칫 무거워질 장면을 유쾌하게 만든 것은 시인의 재치 있는 말 한마디다. 천성을 지키며 살려면 옷 젖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는 그 말 말이다.

타오이앤밍(陶淵明)은 과연 전원생활을 즐긴 유한족(有閑族)인가? 아니면 귀농한 농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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