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 이제현 <매괴여중·고 교목신부>
  • 승인 2012.06.04 2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 <매괴여중·고 교목신부>

지난 오월 마지막 주일, 전국 가톨릭 고등학교 학생대회가 강화도에서 있었습니다. 학생대회가 이루어지는 수련원에 도착하니, 대회를 주관하는 학교 학생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정해진 학교 시간 속에서도 이 대회를 위해 노력하고 준비한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학생대회는 학생들의 대회이지만, 인솔한 선생님들의 대회도 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평소에 뵐 수 없던 신부님, 수녀님, 선생님들을 학생들 덕분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박 2일이라는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녁 식사 후에 학교별로 준비한 장기자랑 시간이 학생들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또래들이 준비한 장기자랑에 환호로 응원하면서, 학생들은 점점 한 마음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래끼리 소통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갈망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학교가 준비한 장기자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이 흐르면서 무대 가운데 검은 망토를 걸치고, 붉은 상의를 입은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섰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망토를 입은 학생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어서 그 안으로 흰 티셔츠를 입은 학생이 불려 들어왔습니다. 역시 검은 망토를 입은 학생의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그렇지만 안간힘을 다해 저항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망토를 걸친 학생의 지시에 따라 검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흰 티셔츠를 입은 학생을 완전히 자신들 속에 끌어당기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그들과 학생 사이에 섰습니다. 그리고 흰 옷을 입은 학생을 끌어당기던 모든 것을 끊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망토를 걸친 학생과 격렬한 싸움 끝에 그 학생을 구하고 안아주었습니다.

이 춤으로 꾸민 짧은 연극에서 학생들은 선(善)과 악(惡)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신앙도 드러냈습니다.

학생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새롭게 만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명을 찾아 나아가도록 아낌없이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