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은 태극기와 함께 합니다
호국보훈은 태극기와 함께 합니다
  • 이은애 <청주보훈지청 보훈팀장>
  • 승인 2012.06.0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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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은애 <청주보훈지청 보훈팀장>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용사 12명의 유해가 후배 장병들의 호위 속에 선명한 태극기에 덮여 무려 62년 만에 고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북한에 묻혀 있던 국군 유해가 봉환된 것은 휴전 이후 처음이라며 이명박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등이 최고의 예우로 맞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아온 12명의 유해 중 가족을 찾은 분은 2명이며 나머지 10명은 DNA검사 등 정밀감식을 통해 가족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루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시길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1883년 3월 6일 고종의 명으로 태극과 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습니다. 이후 태극기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국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외치던 3·1만세운동, 침략의 원흉들을 처단한 안중근, 윤봉길 의사가 거사 후 가슴에서 꺼낸 것도 태극기였습니다. 8·15광복의 기쁨에 국민이 손에 들고 나왔던 것도 태극기였습니다. 어린 학도병들이 피를 흘리며 고지를 점령한 후 처음으로 꽂은 것도 태극기였습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고 머나먼 독일의 수천 미터 막장에서, 50도 열사의 사막에서, 오대양 육대주를 개척할 때도 태극기를 내세우며 오늘날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경제발전을 토대로 성공리에 개최한 88올림픽, 2002월드컵 때도 붉은 물결과 '대한민국' 함성 속에 태극기가 함께 하였습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면 학교 운동회 때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휘날리던 만국기를 보고 저것은 어느 나라 국기라고 줄줄이 외우곤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태극기의 유래와 담긴 뜻을 알고 직접 스스로 만들어 내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태극기의 소중함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태극기는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우주 만물은 음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국기보다 우리나라 태극기만큼 심오한 뜻을 가진 멋진 국기는 없습니다. 태극기와 함께해 온 아시아의 작고 가난했던 대한민국! 그러나 이젠 세계 속에 당당히 선두로 달리는 대단한 대한민국입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제57회 현충일, 제62주년 6.25와 제2연평해전기념일이 있는 달입니다. 올해만큼은 모든 가정에서 자녀와 함께 태극기의 역사, 담긴 뜻, 태극기 활용에 대해 알아보고 태극기를 내걸어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나라 사랑의 마음을 키워 봅시다.

또한 북한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 유해가 3만9000구 정도 있다고 합니다. 남북은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6.25전사자 유해의 공동발굴에 합의하기도 했으나 북측의 무성의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라를 위해 순직하신 선열들이 고국의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국가보훈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하신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보훈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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