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와 어머니
찔레꽃 향기와 어머니
  • 이효순 <수필가덕성유치원 원장>
  • 승인 2012.06.0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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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덕성유치원 원장>

유치원 진입로에 하얀 찔레꽃이 피었다.

신작로 옆 산비탈의 밭두둑에 하얗게 무리를 이룬 모습이 유난히 정이 많으셨던 어머니처럼 애틋함이 묻어난다. 도심지에서 보니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찔레꽃이 피기 시작하면 초여름이 시작된다.

농촌은 일손이 바빠진다. 꽃에 얼굴을 가까이하니 향긋한 냄새가 온몸으로 퍼지는듯 하다. 고향처럼 소박한 꽃이다. 초록 잎 사이에서 가녀린 봉오리를 부풀려 가시를 몸에 지닌 채 피어나는 꽃. 이름도 애수가 가득 서린듯해 늘 끌리는 꽃이다.

찔레꽃은 원래 들장미이다.

소녀 시절 '들장미' 노래를 부르며 상상을 했었다. 노래까지 있는 것을 보니 무척 아름다운 꽃인가 생각했다. 어느 날 생물 선생님께서 들장미가 찔레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미 아는 꽃이라 친근감이 더 생겼다.

어린 순은 꺾어 껍질을 벗겨 먹으면 달큰한 맛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소박한 꽃의 모습에 비해 향기는 얼마나 진한지, 어머니 품안처럼 포근함과 넉넉함이 함께 묻어난다. 꽃 냄새를 맡으면 어머니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사라진 고향도 떠오르고 헤어진 고향 동무들 모두가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찔레열매를 따서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기에 더 애절한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찔레꽃이 필 무렵 집에서 멀리 떨어진 따비 밭에 아버지와 함께 고구마 순을 심으셨다.

집에서 동생들과 함께 놀다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얼마나 덥고 목이 마르실까? 부엌으로 가서 쇠주전자에 당원물을 탔다. 설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동생에게 집을 부탁하고 20분이 넘게 걸리는 작은 산길을 지나 골짜기 따비 밭으로 갔다.

어린 딸이었지만 맏이였기에 그런 마음이 들었나 보다. 주전자를 받아든 부모님의 웃음 띤 얼굴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적삼 아래 굽은 등은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으로 변해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때 오리나무 그늘에 앉아 밭두둑을 바라보니 하얗게 핀 찔레꽃 옆에 연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순을 꺾어주시며 먹어보라고 하셨다. 간식거리도 없고 배고팠던 시절이기에 맛있게 찔레 순을 먹었다.

어렵게 살았지만 서로 따듯하게 오간 정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넣어 주었다.

하얀 하트모양의 다섯장의 꽃잎이 꽃송이를 이루어 노란 수술과 함께 감미로운 향기를 내게 전해 주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다정하게 모인 우리 식구들처럼.

찔레꽃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은은한 향기는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젊은 시절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신 어머니시다.

긴긴해 중학교 다닐 때 꽁보리밥에 쌀 한 줌을 넣어 싸 주시던 양은도시락, 그 작은 사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사춘기에 자존심이 상했던 때도 가끔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말문이 막힌다.

그런 어머니가 오늘은 한없이 그립다. 찔레꽃 향기에 어머니를 그리며 윤동주님의 '별 헤는 밤'을 음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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