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맹점
통계의 맹점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5.3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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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통계에는 맹점이 많다.

한마디로 믿을 만한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게다가, 통계는 하나의 권력이다.

왜 요즘 통계가 유행이다. 여론조사통계는 그것 하나로도 정치적이다. 누구의 지지율이 어떻다, 순위가 바뀌었다, 날씨에 따른 투표율의 변화가 심하다. 표준오차는 얼마다 등등, 우리의 삶 속에 어느덧 통계가 들어와 버렸다.

더욱이 통계는 수치로만 남아있지 않고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다.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누군가를 띄우기도 하고, 날려버리기도 한다. 말로만 하던 의견교환에 숫자가 들어가면서 말이 숫자에 밀린다. 그 후보 그래 봤자지라고 상대방의 지지 인물을 한숨에 꺾어버리거나, 자신이 미는 후보의 정당함을 지지율에 근거해서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그런 통계를 믿을 수 있는가?

만일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거짓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하나? 음모론 같지만 거짓된 통계로 대통령을 만들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다면 우리는 통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실 우리나라 통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곧 통계에 권력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권력은 통계에까지 권력을 미쳐 권력에 유리한 통계를 만들어낸다. 통계 하나로 권력을 정당화시킬 수도 있고, 국민의 저항을 왜곡시킬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요구를 부정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의 통계를 믿는 편이다. 그러나 후진국이나 독재국의 통계는 아직 믿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가 우려하는 것은 자본권력의 통계다.

아래는 그저 예이지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통계상 비행기의 사고율과 자동차의 사고율을 비교할 때, 비행기의 사고율이 자동차보다 현저하게 낮다고 한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것은 아직도 있다. 사고율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는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예1) 사고 당 사망률을 따져보자. 비행기 사고는 거의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한 사고당 사망률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사고는 많이 나지만 접촉사고가 대부분이다.

예2) 거리 당 사고율이 아닌, 운행시간 당 사고율을 따져보자. 우리가 서울에서 뉴욕을 갈 때 몇 킬로라고 묻지 않는다.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다.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운행거리가 아니라 운행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다. 비행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예3) 자동차와 비행기에 머무는 시간을 기준으로 사고율을 따져보자. 대부분의 경우, 자동차는 하루에 한 시간을 탄다면, 비행기는 일 년에 하루를 탈뿐이다. 그러니까 사고율이 아니라 안전율을 따져보자. 머무는 시간에 대한 사망률로 말이다. 이용 횟수면 더 좋다.

기준이 달라지면 통계도 달라진다. 아무리 권력기관이라도 통계 자체를 속이지는 못하니 기준을 유리한 쪽으로 잡으려고 달려든다. 비행기회사의 자본이라면 통계회사 하나쯤은 주무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 위의 기준으로 낸 통계를 보지 못했다.

이거 너무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다. 통계가 건강해야 나라도 건강해진다. 통계에는 사고율만이 아니라 빈곤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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