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건 웃지요
왜 사냐건 웃지요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5.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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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살다보면 가끔은 뜬금없는 소릴 듣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너 왜 사냐"일 것이다.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다. 1930년대 시인 김상용은 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그야말로 뜬금없이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되뇐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말에는 삶에 대한 달관이 듬뿍 담겨 있다고들 말하는데 이런 뉘앙스의 말은 한시(漢詩)에도 보인다.

당(唐)의 시인 리바이(李白)는 달관(達觀)의 나이가 아닌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 말을 하였다.

리바이(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을 보자.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 왜 푸른 산에 깃들어 있냐고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불답심자한) :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 복숭아 꽃 흐르는 물을 타고 아득히 떠나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 따로 또 하나의 천지가 있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네

지금의 쓰추안(四川)성 칭리앤시앙(靑蓮鄕)에서 유년기를 지낸 리바이(李白)는 24세 되던 해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다 27세에 후베이(湖北)성 안루(安陸)라는 곳에 정착하여 그곳의 명문대가인 쉬(許)씨 집안 여자와 결혼하였다.

위의 시는 이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시 속의 푸른 산(碧山)은 안루(安陸)에 있는 바이자오(白兆)산이다. 리바이(李白)는 이 산에 잠시 은거하며 지냈는데 당시의 심경(心境)을 담담하게 읊고 있다.

흔히 리바이(李白)의 시풍(詩風)은 호방(豪放)하다고 하지만 이 시의 맛은 전혀 그렇지 않다. 늘 술에 취해 있을 것 같은 리바이(李白)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요한 관조(觀照)의 세계가 엿보인다.

산속에서 만난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어떻게 만났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묻는 사람은 다재다능한 젊은이가 산속에 은거하는데는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그냥 왜 사냐고 했다면 밋밋하니 맛이 없을 뻔한 첫 구(句)를 살린 것은 서(棲)라는 글자이다.

서금(棲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서(棲)는 새가 숲에 깃든다는 뜻이다. 왜 사냐고 물은 게 아니라 왜 새처럼 깃들어 사냐고 물은 것이다. 시인의 산속 거처의 꾸밈없는 모습과 자연과 하나가 된 시인의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가 이 한 글자에 들어 있다.

애당초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것이 아니었다. 이 장면에서 미주알고주알 말로 대답을 하고자 한다면 이는 하수이다. 빙긋 한번 지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모습이 여유롭고도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시인은 대답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마음이 저절로 한가해진다(心自閑)'가 시인이 생각해 낸 답이지만 말로 내뱉진 않았다. 시인은 마음이 저절로 한가해 지기 때문에 산에 새처럼 깃들어 사는 것이었다.

5월 말이면 만개(滿開)하는 복숭아꽃은 시인이 이 산속에 은거하는 또 다른 이유다.

시인은 복숭아꽃으로서 자신이 깃든 산을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탈바꿈시킨다. 불로장생(不老立?)의 소망이 실현되는 곳, 탐욕과 다툼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저절로 마음이 한가로워 지는 곳 말이다.

그러니 시 속의 푸른 산은 사람 세상에 있는 예사 푸른 산이 아니고 복숭아꽃이 핀 별천지(別天地), 곧 무릉도원(武陵桃源)인 것이다.

대답하지 않아야 될 물음에는 그냥 웃자. '왜 사냐건 웃지요'든 '소이부답(笑而不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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