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태양은 아내
가정의 태양은 아내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2.05.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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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 술이나 한잔 하잔다. 한바탕 부부 싸움을 하고 홧김에 나왔다고 한다. 아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부부 싸움인가. 아직도 감히 마나님과 대적할 생각을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바짝 엎드리라고 충고했다.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녀석은 등 떠밀려 집으로 돌아갔다.

부부 싸움. 나도 역전의 용사다. 물정 모르던 시절 얘기다.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보기 창피하고,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집 태양은 아내라고 초강력 울트라 자기최면을 걸었다. 그 순간 부부 싸움은 내 사전에서 사라졌다. 집안에는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 얼굴에서 불안감이 사라지고, 가정은 생기와 웃음을 되찾았다.

나는 아내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무조건 맞장구를 쳐준다. 아내의 기분이 좋아지면 지나가듯 슬쩍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성공 확률. 거의 100%다. 꼼수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얼마전 뉴스에서 아내의 과도한 교육열로 파경을 맞은 부부에 대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남편 손을 들어줬다는 기사를 보았다. 서울가정법원 판결이다. 재판부는 교육을 명목으로 자녀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면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여성에게 가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이혼을 허락하고, 위자료 1000만원을 남편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여성은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어린 아들에게 "살 필요가 없다"는 등 폭언과 구타를 일삼고, 심지어 책상에 톱질을 하고, 잠을 안 재우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말리는 남편과 갈등을 빚으면서 몇 년째 방을 따로 쓰고, 말도 섞지 않았다고 한다. 나같이 꼼수로 대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기야 무슨 방법인들 안 써 봤을까. 남의 집 얘기 함부로 할 것 아니다. 부부관계는 오로지 신(神)만이 안다고 하지 않는가.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순 없다. 가정도 그렇고, 조직이나 나라도 그렇다. 지는 태양과 떠오르는 태양이 있을 순 있지만 두 개의 태양이 나란히 빛을 발할 순 없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피곤해서 안 된다. 앙앙불락하는 부모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아이들처럼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헷갈리니 말이다. 러시아의 진짜 태양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임이 분명해졌다. 푸틴은 올 3월 대통령에 당선돼 '21세기의 차르'로 등극한다. 세계를 혼란스럽게 했던 러시아의 두 태양 논란은 막을 내렸다. 모스크바의 안개도 걷혔다.

사족을 붙인다면 내가 아내를 태양으로 떠받드는 것은 패배주의나 타협주의가 아니다.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게 포인트다. 어디 감히 마누라에게 대들 생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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