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식사
거룩한 식사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5.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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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시에서 문득 남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제 때 밥먹고 일하라'는 남편의 밥그릇 철학과 마추칩니다. 문장을 따라 혼자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편도 딸려옵니다. 더위를 쓸어내리며 식당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겸연쩍은 마음에 메뉴판을 들추지는 않는지. 행여 울컥 올라오는 점심을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시레 눈에 밟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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