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이
첫사랑 그이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5.2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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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규영 <창주 중앙동>

그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가슴이 두근 두근, 세근 반 네근 반, 쿵닥 쿵닥, 콩닥 콩닥 온갖 소리를 내며 떨려옵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알게 된 그의 근무지를 향해 가는 차안에서 나혼자 예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상상해 가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어떤 말로 첫 인사를 나눌까 나를 기억이나 할까 나를 기억치 못한다면 그 민망한 순간을 어찌 모면할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그를 위해 작은 선물을 마련해 찾아가는 이 길이 그에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망설여지기까지 합니다. 사전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간다는 것이 결례는 아닐는지 몸은 도착지에 다 왔는데도 걸음마다 때늦은 후회가 발걸음을 무겁게 붙잡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그가 내가 나이든 만큼의 세월을 업고 앉아있을 사무실 앞입니다.

똑,똑,똑,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누구신지, 자모님이신가요?"

나를 본인이 근무하는 곳의 학생 자모라 생각하셨나 봅니다.

"저 규영이에요. 정규영. 생각나세요?"

"그래, 너구나. 너!"

26년전, 초등학교 5학년때의 모습 그대로라고, 그때 얼굴 그대로라고 듣기좋은 말로 나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리도 떨리고 망설이며 찾아간 그는 나의 5학년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너무도 멋지셨고 나를 유난히 이뻐해 주셨던 나의 선생님이십니다. 나의 눈에도 선생님은 26년의 세월만 흘렀을뿐 목소리, 걸음걸이 그대로셨습니다. 유난히 키가 크신걸로 기억되었는데 변한 건 선생님의 키와 나의 키가 비슷해졌다는 겁니다.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요. 선생님은 이제 평교사가 아니고 가경동 한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셨습니다. 올 9월이면 정년퇴임을 한다고 합니다. 너무 늦게 찾아뵌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줘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어린애가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넘 좋다고 어찌할 바를 모르십니다.

26년만에 겨우 얼굴 내민 이 게으른 제자한테 말이죠. 선생님은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난히 선생님을 따랐던 한 제자가 아빠처럼 믿고 의지했던 걸 말입니다. 선생님은 이 못난 제자 눈에 제일로 멋진 첫사랑이고, 선생님이셨습니다. 용기가 없어 망설이던 내게 항상 칭찬으로 북돋아 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러 온 그는 내게 즐거운 1년을 선물해 준 분입니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 준 분입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볍습니다. 만나기 전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행여, 나처럼 기우로 인해 만남을 미루고 계신 제자들이 있다면 어서 가벼이 집 밖으로 나서십시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스승과 제자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처럼요. 못본 제자는 오랜만에 만나서 더 반갑고, 자주 본 제자는 자주 찾아줘 고마울테니까요.

이렇듯, 선생님의 마음은 열려 있을 겁니다.

'띵동' 문자가 왔습니다. 그가 보냈네요.

남편도, 아들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 생겼습니다.

'첫사랑 그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려질 그와의 주고 받는 문자메세지에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누군지 궁금해 미칠거 같고 질투에 사로잡힐 남편의 얼굴이 상상이 되어 5월, 어느날 이 아줌마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납니다.

'쉿, 들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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