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목소리
  • 수필가
  • 승인 2012.05.22 0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강 희 진 수필가
어젯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할 듯 망설이는 표정이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성영화의 배우처럼 들리지 않았으나 나는 얼핏 그 뜻을 알아차렸다. 살아 계실 때 "막둥아"라고 불러 주던 그 이미지였다. 돌아가신 후 그 소리를 영영 듣지 못한다는 게 가슴 아프지만 우리 딸들에게 다정히 대해 주셨던 평소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온다.

아버지는 남달리 목소리가 청아하셨다.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이따금 사랑방에 아버지 친구들이 오실 때가 있는데 아버지의 말씀이 유독 경쾌하게 들렸다. 아버지를 닮았는지 나 또한 목소리는 과히 나쁘지 않다. 어디를 가든 목소리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사무실에서 전화로만 통화하는 사람들은 실제 내 나이보다 10살 정도는 적게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서 일주일 동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말을 하려 하면 힘들다며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고 꼭 만나야 하는 분은 목소리를 듣더니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자잘한 일상에 균열이 가고 강의는 나가지도 못했고 더더구나 전화통화 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 말을 못하니 나답지 않게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생겼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성질 급한 내가 그 지경에 이르렀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는 정도는 아니어도 가슴이 답답한 게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은 이틀이 지난 후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말을 아꼈고 최대한 상대방의 말을 다 들은 후에 말을 하기로 마음을 먹자 경청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났더니 말을 적게 하고 요점만 전하면서 새삼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말의 중요성이고 두 번째는 경청이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 목소리는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소리다. 폐의 공기가 목을 통과하면서 성대를 진동시켜 소리를 만들고 이것이 입과 입술을 통과하면서 표현되는 것이 목소리다. 남성의 성대는 굵고 길고 여성의 성대는 짧고 가늘다. 그래서 남성은 저음이고 여성은 고음이다. 현악기 또한 선이 길고 굵으면 저음을 내고 가늘고 짧으면 고음이 나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 하니 놀랍다.

사람의 목소리는 개인 개인 모두 다르고 표현 방법도 다르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 목소리가 38%, 표정이 35%, 태도가 20%을 차지하며 말하는 내용은 겨우 7%에 지나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다. 그러니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겠다. 같은 말인데도 억양이 높고 낮음에 따라 전해지는 의미는 천양지차다.

언젠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사람의 인터뷰에서 성공의 원인이 뭐였느냐는 질문에 '경청'을 꼽았던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니 교수나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후 말을 했는데 상대방에게는 말을 신중히 듣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학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공부를 하고 노력은 했지만 남의 말을 신중히 듣는 자세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이번 감기를 통해 경청의 효과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주워 담지 못하는 게 말이다. 잘못 나온 말은 또 아니함만 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침묵이 금이라면 웅변은 은에 지나지 않는다. 말을 줄이면 실수와 오류도 줄어든다. 이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나 감기를 호되게 앓고 나서 얻은 깨달음이 참으로 소중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