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 된 날
둘이 하나 된 날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5.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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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 세 강 수필가
아파트 뒤 배란다 창을 여니 뒷산 공사현장에 외롭게 남아있던 서너 그루의 아카시아 나무가 마지막 휘날레를 장식하려는 듯 온몸을 하얗게 치장하고 상큼한 꽃향기를 산들바람에 실어 집안으로 들여보낸다.

이제 연록의 5월도 중순을 지나 빠르게 짙은 신록으로 넘어가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특히, 올해 5월은 윤 3월이 들어 있어 손 없는 달이라고 이장, 이묘 등 조상을 돌보는 가정이 많다.

그러나 예로부터 윤달엔 자녀의 혼사는 잘 치르지 않는데 워낙 아름다운 계절이라 그러한지 새 가정을 이루는 신혼부부도 많이 탄생하고 있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내게도 지인의 아들 혼사 주례부탁이 있었다. 한없이 부족하고 별 볼일 없는 나를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 생각되어 고맙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새 가정을 이루기 위해 출발선상에 선 신혼부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나 걱정되는 마음으로 35년 전 나의 결혼식 때 주례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떠올려 보았다.

뚜렷이 기억되는 것은 효는 백행의 근본이니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이 키포인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내가 이번에 신랑 신부에게 그렇게 주례사를 시작한다면 모두들 맛이 가도 한참 간 사람으로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오리지날 노털리스트라고 놀려 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예비 신랑 신부가 인사차 들렸기에 신랑은 신부에게, 신부는 신랑에게 앞으로 상대를 배우자로 맞이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서로의 다짐을 A4용지 반장 분량으로 써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일 주례사는 결혼은 100점짜리와 100점짜리가 만나서 사는 것이 아니고 30점짜리와 40점짜리가 만나 100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살다보면 적지 않은 의견충돌을 겪을수밖에 없다.

그것은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단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내 입맛에 맞게 뜯어 고치려는 야무진 생각은 지금 이 순간 모두 버리고 신혼을 시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 한 다음 신랑 신부에게 각자가 써온 배우자에 대한 맹세문을 하객 앞에서 낭독하며 스스로 다짐을 굳히는 것으로 주례사를 마감하였다.

몇몇 분들은 나의 주례사가 끝난 다음 대단히 신세대적이고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독특한 것이었다고 말씀하시어 나는 우쭐하였다.

아무쪼록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맹세한 일편단심으로 행복한 해로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식장을 나왔다.

오늘은 부부의 날이다. 5월(5) 가정의 달에 둘(2)이 하나(1) 된다는 의미로 몇 해 전부터 5월 21을 부부의 날로 정하였다고 한다. 아마 위기의 부모, 위기의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 때문에 생겨 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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