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서 그립다
봄이라서 그립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5.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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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어느덧 5월 중순이다. 모든 세월이 다 지나고 보면 덧없이 빠르게 느껴지지만, 그중에서도 봄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꽃샘추위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하며 봄을 투정한 게 엊그제인데 벌써 봄은 성큼 돌아서 자리를 뜨려 한다.

당(唐)의 여류시인 쉬에타오(薛濤)는 춘망사(春望詞)라는 시에서 봄을 이렇게 읊었다.

花開不同賞(화개불동상) : 꽃은 피었건만 함께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화락불동비) : 꽃이 지건만 함께 슬퍼할 님 없네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 님 계신 곳에 묻고 싶어라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 꽃 피고 꽃이 지는 때를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 꽃에 바람 불고 해는 곧 지려는데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 오기로 한 임은 여전히 아득하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 한마음 사람으로 맺어지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 그저 한 줄기 풀만 맺을 뿐

그렇다! 봄이라서 그립다. 그런데 이런 봄을 함께 할 님이 곁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봄을 원망한다는 제목을 걸었다. 봄은 꽃이 피는 것으로 시작해서 꽃이 지는 것으로 끝난다. 꽃이 피면 즐거워야 하지만, 시인은 그렇지 못하다. 꽃이 지면 슬퍼야 하지만, 시인은 그렇지 못하다. 함께 할 님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인은 봄이 좋은 게 아니었다. 봄에 오기로 약속한 님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봄만 있고 님은 없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봄도 꽃도 의미가 없다. 슬프고 쓸쓸한 장면에 생기를 불어 넣은 것은 시인의 재치이다. 두 사람이 꽃 피는 봄에 만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있는 곳이 문제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은 꽃이 피고 지는 봄인데, 멀리 떠난 사람이 있는 그곳은 봄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여자는 묻는다. 님 계신 곳은 봄이 언제냐고. 원망이 유머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님에 대한 원망을 재치로 피해가며 다시 희망을 가다듬는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럽다.

첫수가 유머와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한다면 둘째 수는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시인을 초조하게 하는 것은 뜻밖에도 봄의 꽃과 해이다. 꽃에 부는 바람이 밉다. 바람이 불면 꽃이 질 것이고, 꽃이 지면 님이 오기로 한 봄이 지나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싫다. 봄이 가기 때문이다. 봄이 가는 모습, 초조한 시인의 마음이 또렷하게 보인다. 섬세한 감각이요, 빼어난 감수성이다.

마지막 두 구(句)는 재치의 클라이맥스다. 글자 운용의 묘미를 볼 수 있으니, 결(結)과 동심(同心)이 그것이다. 결(結)은 매듭을 맺는다는 뜻으로 그 대상은 보통 풀이나 실,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다.

사람에게 쓰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결교(結交)니 결연(結緣)이니 결혼(結婚)이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동심(同心)의 풀이는 사람의 경우에는 한 마음이요, 풀의 경우는 한 줄기이다. 두 포기 풀을 하나로 묶은 것이 동심초(同心草)요, 그러한 풀처럼 하나가 된 사람이 동심인(同心人)이다. 임을 만나 하나가 되고 싶은 욕구를 풀매듭으로 해소하는 시인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성인처럼 지혜롭다.

봄이라서 그립다. 오기로 한 님이 그립다. 봄은 왔다 가건만 님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슬프지도 절망스럽지도 않다. 간 것은 봄일 뿐, 님이 아님을, 봄은 다시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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