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요청
친구 요청
  • 이제현 <매괴여중·고 교목신부>
  • 승인 2012.05.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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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 <매괴여중·고 교목신부>

지난번에 한 주간의 감사인사인 'TGIF'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뜻이 새롭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곧 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의 앞글자를 따서 'TGIF'를 마치 정보화 시대를 찬양하는 말처럼 부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저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페이스북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말 그대로 '얼굴 책'입니다. 얼굴을 보고 아는 사람이라면 서로 친구 요청을 하여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글 아래 '좋아요'라고 응원해주거나, 댓글로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제 페이스북 안에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이들을 가만히 보니, 그 친구들은 대부분 자주 만날 수 없거나, 가까이 살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연령대도 참 다양합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개인설정을 하면 친구끼리만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또 친구로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함께 만나는 친구에게 하듯이 즉시 응답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오래 두고 깊이 사귀는 벗이 아니라,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유한 인격적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며, 연령, 거주지 등의 개인차를 뛰어넘어 친구관계를 지향하는 문화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가 진정한 친구 관계를 지향하고 있는지는 좀 더 성찰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친구를 사귀는 이유가 우리 가까이 있는 온갖 첨단 기기를 내 마음대로 다루듯이, 상대방을 도구적 수단으로 여기는 표현방식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실 참된 친구가 되어주는 방법은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얼굴하면 떠오르는 철학자가 레비나스입니다. 그는 우리 몸의 다른 부분은 옷을 입어 가리지만, 얼굴은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통해 내가 주도할 수 없는 존재로서 타자(他者)를 만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타자의 얼굴은 곧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비폭력적 돌봄의 요청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타자의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참된 자아실현을 이루는데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굴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그 얼굴은 '끼리끼리'를 넘어서, '나부터'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부릅니다. 나아가 우리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 온 세상이 우리에게 외치는 친구 요청을 듣게 합니다. 그 요청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지 않도록 다음 성경말씀대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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