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는 보시 천배의 가치가 있다
베푸는 보시 천배의 가치가 있다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05.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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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나는 주말도 없이 돌아가는 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다. 일반적으로 현장사원이라고 하지만 속된 말로 공돌이라고도 한다.

주야로 교대하는 직장이 또한 제법이나 멀어서 이용하는 통근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어제도 야간근무로 직장에서 밤을 새웠다. 새벽이 되어서야 출근하는 동료들과 교대하며 퇴근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전이나 다름없이 퇴근준비를 하면서 잠깐 휴게실 의자에 주저앉았다. 통근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쉬려고 앉은 휴게실에서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깨워 화들짝 놀라 일어났더니 통근버스가 출발한지 한참이나 되었다. 괜스레 주저앉아 있었다고 후회하며 정문을 나섰지만 이런 일이 어제 오늘만이 아니다. 정문을 나서면서도 후회의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직장은 청원이고, 집은 청주라서 택시비가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걸어서 갈 거리도 못돼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시큰둥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첫 손님이 택시비를 깎아달라고 하더란다. 설마 무슨 손님이 택시비를 깎냐고 말했더니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로 핸들을 움켜잡았다.

그리곤 한숨을 몰아쉬며 택시기사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침에 택시에 탄 손님이 오창읍에서 청주고속버스정류장을 가자고 했단다. 제법 거리가 멀어 택시요금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택시기사에겐 무엇보다 반가운 것이 장거리 손님이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내달렸단다. 그런데 정류장에 도착하자 손님은 택시비가 많이 나왔다며 깎아달라더란다. 정말로 돈이 없어서 사정하는 사람이라면 봐주겠는데 얼핏 보니 돈도 제접 많아보이는 중년사내가 거드름을 피우며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비를 깎아주고는 재수 없어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를 태웠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일까 하면서 눈길을 차장으로 돌리다 창문 아래에서 하얀 종이를 발견했다. 슬그머니 꺼내 훑어보니 한편의 시처럼 적혀있는 글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이는 조금 있어도 베풀고/ 어떤 이는 많아도 베풀지 않으니/ 조금 있어도 베푸는 보시는 /천배의 가치가 있다// 주기 어려운 것을 주는 사람들/ 하기 어려운 것을 하는 사람들/ 옳지 못한 사람을 흉내 낼 수 없으니/ 옮은 사람의 가르침은 따르기 쉽지 않네// 옳지 못한 사람과 옳은 사람은 /죽은 후 가는 곳이 다르니/ 옮은 사람은 좋은 곳으로 가고/ 옳지 못한 사람은 나쁜 곳으로 간다네// 베푸는 사람에게 복은 늘어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원망이 없으며/ 선한 사람은 나쁜 과보를 받지 않고/ 탐진치는 다하여 열반하라//

택시기사에게 누구의 시냐고 물었다. 그는 아내가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면서 부적과 함께 건네주었다고 말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베풀기는커녕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욕심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거기에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주려는 사람은 죽어서도 가는 길이 다르다는 말씀. 조금 있어도 베푸는 보시는 천배의 가치가 있다는 말씀에 나를 들여다보고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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