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 김성수 <청주새순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2.05.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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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성수 <청주새순교회 담임목사>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는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위대한 이름이 어머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머니'라는 단어가 입속에서 입 밖으로 내뱉어지기 전에 벌써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 저려오는 말이 '어머니'라는 단어다. 어머니를 부르면 그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고, 금새 온몸에 피가 도는 것 같다.

홍수환 선수가 저 멀리 아프리카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던 그 순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하던 목소리는 우리 국민 모두의 귓전에 지금까지 쟁쟁하지 않은가? 가장 기쁜 순간에도, 가장 슬픈 순간에도 부르고 싶은 이름이 '어머니'다.

무한한 나의 편, 무조건 나의 편, 내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내 모든 실수까지, 내 부족까지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시던 어머니. 그 사랑을 하늘같은 사랑, 바다 같은 사랑이라 했던가? 그래서 바다 해(海) 라는 단어 안에 어미 모(母)가 숨겨져 있는가? 바다가 모든 것을 '받아' 주기에 '바다'라 부른다 말하듯, 어머니의 가슴은 늙어지고, 작아져도 더 깊어지고, 더 강해지고, 더 높아진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도저히 오르지 않는 성적을 어찌할 수 없어 집안 형편으로는 안 되는 억지를 부려 하숙집을 구하고, 책상 앞에 '어머니' 사진 대신 미술책에 나오는 작은 그림 하나를 오려 붙였다. 나의 어머니를 닮은 모습이었다. 몸빼바지에 흰저고리, 희끗희끗 빗어 넘긴 머리위에 봇짐을 이고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내 어머니를 닮았었다.

나는 3학년 내내 이불을 펴지 않았다. 그저 이불에 기대 새우잠을 잠간씩 청했다. 나를 위해 평생 고생의 짐 보따리를 이고, 부모 없이 오라버니 밑에서 곱게 자랐다던 그 분이 자식을 위해서는 부끄러움도 고단함도 잊으시고 사셨던 그 어머니 앞에서 두 다리를 뻗고 잠들 수가 없어서였다.

그 때 내 힘의 원천, 내 동기(motivation)의 원천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없던 힘도 솟아났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치지 않았다. 그 힘으로 버티고, 그 힘으로 견뎌냈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 내 나이 때 한 자식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내셨다. 그래서 어느 서러운 날에는 타령조로 눈물 반, 노래 반 잃은 자식을 그리워하셨다. 어떻게 그 슬픔을 이기셨을까? 어떻게 그 아픔을 견디셨을까? 인정 많아 배고픈 사람을 보면 퍼주기를 즐겨하셨던 따뜻한 마음을 가지셨던 분이 어떻게 태산이 무너지는 슬픔을 이겨냈을까?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나의 부모님은 세상을 뜨시고 이 세상에 없다. 그래도 어버이는 언제나 곁에 계신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도, 하늘을 보다가도, 여행을 하다가도 문득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나면 눈이 따갑도록 눈물이 난다. 그리워서, 뵙고 싶어서, 부르고 싶어서…. 이 세상 어디에서 내 어머니, 내 아버지 같은 분을 만날 수 있겠는가 나의 어버이는 나의 산이요, 나의 바다요, 나의 하늘이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더 슬프고 마음이 따가운 것은 효도하고 싶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기뻐하시고,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감격하실, 이 세상 단 한 분밖에 없는 영원한 내편 그 어버이가 세상에 없기 때문에, 갑자기 전구에 필라멘트(filament)가 나간 갓 같이 먹먹하다.

'어머니'를 불러보면, 그 거친 손이 손등에 느껴진다. 따뜻한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고, 금방 부엌에서 김 모락모락 나는 찐 감자를 들고 나타나실 것만 같다. 오늘도 허공에 대고 '어머니'하고 조용히 불러 본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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