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문화의 산 증인 5월에 떠나다
청주문화의 산 증인 5월에 떠나다
  • 박영수 <수필가·전 청주문화원장>
  • 승인 2012.05.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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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영수 <수필가·전 청주문화원장>

그날, 차창 밖으로 본 무심천 벚꽃구경이 이승에서 누린 마지막 호사였구려.

긍정과 소통의 달인 수암 우영 원장님, 멀리 상해에서 날아온 손자 희원·희재 형제 얼굴에 핀 눈물꽃 보니 '어영부영하다 우영됐다'던 그 무거운 삶의 짐 내려놓을만 하던가요.

한 달이 넘도록 내려놓기, 마음비우기하며 이별연습을 하였건만, 인생의 아침나절에 만난 인연깊은 정인을 보내는 이 슬픔 억누를 길이 없구려. 정녕 4월은 '잔인한 달'인가 봅니다.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에서 태어나 아호를 수암(水岩)이라 했던가요. 60여 년 전, 학창시절부터 키우던 문학의 꿈을 잠시 접고 들어간 충청일보에서 형은 타고난 문재를 작품이 아닌 '문화부 기자'로 꽃피우셨죠.

이 지역 언론계 최초의 '문화부장'이 되어 신춘문예공모, 학생미술대회, 전국서예대회 등 굵직한 사업들을 주도하며 지역의 문인, 예술인 발굴에 앞장서시어 척박한 청주땅을 문화예술의 배양토로 북돋아 주셨습니다.

천품이 자유인인 때문인가요. 사회부장, 편집부국장, 기획실장 등 잘 나가던 언론계 생활을 박차고 나와 '보나르 화방'을 차릴 때, 지인들이 의아스런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평범한 '화구점'이 향토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명소화 되어가자, 멋쟁이 보나르 아저씨의 탁월한 친화력이 선망의 대상으로 변해갔습니다.

형의 독특한 문화마인드와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후덕한 인간미는 80년대 들어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80년부터 청주문화원장을 맡아 향토사연구회를 발족시켜 청주문화 정체성 찾기에 불을 당기고, 83년부터 충북예총 회장을 맡아 예술인의 긍지를 높이며 최초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한민국미술대회 등을 유치하여 중앙과의 교류사업을 활성화 하는 등 향토문화예술 중흥의 기틀을 다져놓으셨습니다.

형께서는 90년대 이후 늘 앞자리 보다는 뒷자리에 앉아 소통, 화합, 통합의 정신을 실천궁행하셨습니다.

'청주 근세 60년 사화' 발간을 주도하셨으나 위원장이 아닌 상임부회장을 맡더니 충북지역개발회에도 수석 부회장, 청주문화산업재단도 부이사장, 언론중재위원회 중앙부회장 등 부(副)자를 달고 다니셨는데, 이는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겸허가 몸에 밴 형의 인간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형은 성격이 모나지 않고 밝은 데다 유머, 위트 감각이 탁월하여 좌중을 압도하시면서 화기가 넘치게 만드셨죠. 어디 그 뿐입니까. 한 마디의 말에도 철학이 엿보이는데다 감칠맛 나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어느 유명 작가를 매혹시켜 방송드라마 주인공이 된 일도 있죠. 반한 사람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청주를 찾는 중앙문인들 중에 미당 서정주 선생과는 각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사람과 자리 가리지 않는 두주불사의 호주가인데다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품도를 지켜 멋쟁이로 불리기도 했지만 오늘 영정 앞에 서고 보니 크나큰 아쉬움이 되기도 합니다.

형께서는 상(賞)을 탐하는 일이 없어 각종 문화상을 외면했으나 청주문화원이 제정한 '청주문화지킴이상'은 기꺼이 받으셨죠. 스스로 문화지킴이라 칭하며 박물관 등지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해 온 터였습니다.

며칠전 형은 내게 마지막 부탁을 해오셨죠. 지킴이상 받을 때 사진 찾을 수 있느냐고. 아하 그 사진이 마음에 드셨구나. 밝게 웃는 모습, 오늘 영정사진으로 내걸었습니다. 향을 사르고 꽃 한송이 바치는 모든 분들이 사진을 우러릅니다.

이제 형이 우리 곁을 떠나셔도 형이 남긴 혁혁한 공로와 훈훈한 인간미는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파안대소하는 형의 웃음이 청주문화예술의 꽃으로 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형의 뜻을 계승하리다. 겸허와 배려, 그리고 화합의 인간도를 잊지 않으리다.

우영 원장님, 이승의 걱정 다 놓으시고 영원한 명부의 복을 누리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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