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이 벌이는 봄의 축제
요정들이 벌이는 봄의 축제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2.05.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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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요정들이 한반도의 최남단 마라도에서 만났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한반도의 계절 잔치마당을 위한 만남이었다. "서둘러야 해!" "애호랑무늬 옷을 입은 요정이 말했다." "눈의 요정을 만나면 어쩌지"동백꽃 무늬를 입을 요정이 말했다. "아이 난 찬바람이 젤 무서워" 진달래 빛 날개옷을 입을 요정이 몸을 떨었다. " 자, 이제부터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물고 앞만 보고 달리는 거야" 복수초처럼 흰 눈을 머리에 인 요정이 말했다. "야호! 이젠 우리들 세상이야. 힘껏 달려야 해 모두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보를 받았으니 당장 출발이다. 준비 땅!" 현란한 봄의 요정들이 아지랑이를 타고 일제히 달리기를 시작한다.

봄의 요정들이 3월 3일 제주도에 도착하자 한림공원의 매화축제는 시작되었다. 매화축제가 시작되었다는 바람의 말을 전해들은 제주엔 17일 튤립축제, 20일 유채꽃 축제, 4월 6일 왕벚꽃 축제가 잇달아 열렸다. 유난히 달리기가 빠른 요정이 있어서 3월 25일 땅끝 매화축제와, 순천매화축제가 열렸으며, 4월 5일 부터는 영취산 진달래도 붉은 옷을 입고 축제를 시작했다. 4월도 초반을 넘어서자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는 봄의 요정들 몸은 무섭게 부풀었다. 구름처럼 부풀고 새털처럼 가벼워진 요정들은 부푼 만큼 가벼워져서 달리는 것 보단 날아가는 형국이었다. 달리기를 빨리한 요정들 덕분에 한반도는 일제히 봄의 축제에 묻혀버려 사람들은 꽃 멀미를 앓는다고 했다. 속기록과 전보통신 임무를 띤 요정은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의 속기록엔 축제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갔다.

의성산수유축제. 김천 자두꽃 페스티벌. 영주소백산 철쭉제. 화개장터 벚꽃축제. 대금산 진달래축제. 통영 붕숫골 꽃 나들이축제. 함양 백운산 벚꽃축제. 천주산 진달래축제. 낙동강 유채축제. 서운암 들꽃축제. 합천 황매화축제. 목포 유달산 꽃축제. 담양 용면 벚꽃축제. 신안 튤립축제. 제암 철쭉제. 완주 소양 벚꽃축제. 모악산 벚꽃잔치.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 계룡산 벚꽃축제. 금산천 봄꽃 페스티벌. 동백꽃 수선화 축제. 비단고을 산골나라 산골축제. 홍도화 축제. 충주호 봄 나들이 축제. 청풍호 벚꽃 축제. 단양 소백산 철쭉제. 경포 벚꽃잔치. 삼척 맹방 유채꽃 축제. 설악산 벚꽃축제. 강릉 복사꽃축제. 이천 백사 산수유축제. 양평 산수유축제. 경기도청 벚꽃축제. 부천 도당산 벚꽃축제. 속기사 요정의 손은 정신없이 바빠지고 땅 깊은 곳에서 전보를 받은 물의 전령들이 생명의 뿌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푸른 물을 뿜기 시작했다.

눈처럼 벚꽃이 날렸다. 눈처럼 벚꽃이 쌓였다. 펄펄 눈이 내리는지 펄펄 꽃이 내리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향긋하고 따슨 바람이 비질하듯 꽃들을 그러모아 내게로 던졌다. 꽃잎들이 발목을 덮었다. 잠시 잠깐 무릎을 덮었다. 가슴까지 꽃이 쌓이는가 싶더니, 목까지 차올랐다. 향기 때문인지 꽃잎 때문인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얼굴에 붙은 꽃을 떼어 내려고 허우적 거리는데, "까르르..... 까르르.." 들리는 소리, 번쩍 눈을 떴다.

며칠 혼자 갤러리 근무라서 충주 땜에 벚꽃이 한창이란 소리를 들었는데도 가지 못해 안달이 났다. 오후 4시경 손님들이 끊기 길 기다려 잠시 갤러리 문을 잠그고 얼른 다녀 올 생각으로 댐으로 차를 몰았다. 댐은 벚꽃 맞이 손님들로 그득했다. 터널을 이룬 벚꽃 가운데로 천천히 달리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향기에 온 몸이 젖는 느낌이다. 나란히 나란히 서 있는 차량 끝에 차를 세웠다. 의자를 젖히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검은 차가 하얀 꽃잎으로 덮이는 동안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요정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북녘 어디쯤 달리고 있을 봄의 요정들 안부가 궁금하다. 북녘에 열리는 상춘객들 축제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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