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의 함정
계륵의 함정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04.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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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계륵(鷄肋)은 별달리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지난주에는 계륵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며 지냈다. 어느 날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분이 와서 집을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했다는 말을 듣고 구경을 갔다. 가서 보니 너무나 깨끗한 바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인테리어까지는 아니어도 대청소나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찬장을 치우다 보면 그곳에 있는 물건이 뒷베란다로 가야 했고 뒷베란다를 치우다 보면 또 앞 베란다로 나갈 물건이 쌓여 있다.

이리 저리 옮기고 법석을 떠는 것까지는 참을 만했는데 먼지가 날리고. 매캐한 집안일 중에서 특별히 싫은 게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주부들은 청소라고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나 또한 다른 일과는 달리 청소만큼은 자주 미뤄 온 터라 아무리 해도 끝이 나지 않아 그만 질렸다. 아니 청소는 또 어지간히 끝냈건만 문제는 책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정리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 앞에서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버릴 목록에 집어넣었다가 가져 오고 다시 버리기를 반복했다. 한참 그러고도 결정을 못하고 쌓아 두었다.

그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책이 방 하나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실로, 아이들 방으로, 안방까지 침범해 온 게 오래전이다. 그런데도 막상 버리자니 뜻대로 되지 않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게 스스로도 딱했다. 남편 역시 브리데니커대백과 사전도 올부터는 출간하지 않는다는데 뭐가 그렇게 아까운 거냐고 했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아나똘리 리바꼬프'의 '아르바뜨아이들', '막심고리끼'의 '어머니', 조정래의 '태백산맥' 소설 '동의보감' 등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냄새도 나고 빽빽한 활자는 작아서 읽기도 힘든 것인데 오래전 특별한 감동과 영감을 받은 만큼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또 하나는 아이들의 물건이었다. 유치원에서 보내온 학습파일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시험지까지 보관해 왔는데 막상 버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륵이라고 혼자 뇌이며 과감하게 용단을 내렸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야지 싶어 다시금 선별했으나 아까운 생각이 자꾸 들고 그러다 보니 또 부피가 늘어 10박스 가까이 되었다. 일주일 내내 실랑이를 하였더니 병이 났고 결국 다 치우기도 전에 몸져누워 버렸다.

몸살기가 가라앉은 지금 돌아보니 계륵의 의미가 우리 삶에 얼마나 적중하는지를 알겠다.

아는 분이 내 얘기를 듣고 자기는 책은 읽고 나면 바로바로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린다고 했다. 언젠가 다시 볼 것 같지만 잘 되지도 않고 그냥 쌓아둘 바에는 책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어디 책뿐이겠는가. 물도 흐르고 흘러야 썩지 않고 맑아지며 돈도 돌고 돌아야 골고루 간다. 눈물도 흘러야 눈이 아프지 않는 법이다. 조조를 일러 잔꾀를 부린다고 비웃지만 천하의 인물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게 곧 과감히 버릴 줄 아는 데서 비롯되었다.

나는 한낱 책에 연연했으나 그는 한 나라의 영토를 포기했다. 하기야 남달리 좋아하는 내게 있어 책도 조조가 포기한 한 나라에 버금갈만치 소중해서 그리 망설였으나 앞으로는 더 소중한 것도 버릴 수 있는 소양을 키워야겠다.

버린 만큼 채워진다.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신통치 않은 것은 특히 그렇다. 사는 것도 버리는 연습이라 하지 않는가. 어지간하면 버리는 게 수다. 그렇게 한 십년쯤 살다 보면 내 영혼도 지금보다는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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