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옷을 벗자
겨울의 옷을 벗자
  • 김성수 < 청주 새순교회 목사>
  • 승인 2012.04.16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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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올해는 유난히도 겨울이 긴 것 같았다. 입춘이 지나고 새봄이 오는가 했는데 늦추위가 맹위를 떨치더니 꽃샘추위마저 오는 봄을 매섭게 시샘했다. 그럼에도 개나리는 겨울을 이겨낸 강인한 입술로 노란 꽃잎을 피우고, 4월의 목련은 단아한 새색시처럼 우윳빛 미소를 머금고 자태를 드러냈다. 청주를 어머니처럼 감싸고 도는 무심천변에는 어느 해보다 탐스런 벚꽃이 만개하고 모처럼 청주시민들에게 휴식과 향기의 제전을 펼치고 있다. 완연한 봄이다.

그런데 아직도 겨울옷을 벗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를 모를 만큼 바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일이지만, 몸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해 옷을 벗지 못한 사람, 아직도 추위가 남아 있다고 옷을 벗지 못하는 사람,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지각생, 옷을 바꿔 입어야지 생각은 하면서 게을러서 바꿔 입지 못하는 사람, 가지각색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 여학교 교사로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필자는 계절의 전령사가 되기를 자처한 적이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이보다 먼저 옷을 바꾸어 입었다. 적어도 일주일은 먼저 새 계절 옷을 입었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려주어서 세월에 끌려가지 말고 세월을 끌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학생들이 그런 내 마음을 읽었을까는 의문이지만, 그런 탓에 신선한 생기를 공급하며 교사의 역할을 감당했노라 가끔씩 혼자만의 자부심을 떠올리곤 한다.

성경 중에 솔로몬 왕이 젊은 시절 썼다는 '아가서'가 있다. 거기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아가서 2:10~13)는 구절이 있다.

그렇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고. 비가 내리고 있다고 누워서 빈둥거리고 있다면 이제 일어나야 한다. 새봄이 찾아오면 겨울옷을 벗듯 우리 속에 있는 생각의 겨울옷을 벗어 버리자.

겨울처럼 얼어붙었던 불가능의 핑계를 벗어버리자. 못한다는 생각, 절망의 마음,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에 순응하며 사는 미온적인 자세, 이 모든 것이 나의 발전을 가로막는 겨울옷들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류 역사는 때로 퇴행하고, 시행착오를 겪지만 커다란 싸이클(cycle)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화의 과정을 보든지, 한국사회의 스포츠의 발전사를 보든지 역사는 진보적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것은 항상 겨울옷을 먼저 벗어던지고 새봄의 생명력을 가지고 겨울잠을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마음에 있는 생각의 방들에 낡은 가구가 있다면 먼저 낡은 가구를 치워야 새 가구를 들여놓을 수 있지 않겠나? 자기비하, 무력감, 부정적 생각 -안 된다, 할 수 없다, 못 한다- 이런 낡고 병든 생각을 치워버리자.

꽃샘바람은 무엇 때문에 불까? 봄비는 왜 지면을 적실까? 꽃들은 왜 미소를 보낼까? 새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딱딱한 땅을 헤집고 새싹이 나고, 가지 끝에 새순을 틔우고, 마침내 꽃망울의 터뜨리고, 녹색향연을 벌이며, 아름다운 결실을 만들어 가듯이, 사람 앞에 다가온 시련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 꽃샘추위, 봄비인 것을 기억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리고 내가 만들 역사의 새 장(場)을 향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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