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첫키스 같은 것!
투표는 첫키스 같은 것!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4.1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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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여성이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잠시 후 비좁은 버스에 백인 승객이 타자 버스 기사는 흑인 여성인 로자 파크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지시했다. 흑인 여성은 이를 거부했고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인종차별의 상징이던 흑백분리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흑인에게 법적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1870년이었지만, 흑인이 백인과 함께 평등하게 버스를 타는 데는 그로부터 85년이 더 필요했다. 이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바로 작은 '행동'이었다.

새로운 변화의 장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구시대를 무너뜨리는 변화의 씨앗은 한 사람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요즘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존경받는 안철수 교수는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 건넨 편지에서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하며 변화의 행동을 요청한 것으로 보도된 일이 있다.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제헌의회부터 '전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해서 여성의 참정권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선진 민주국가들의 경우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도 한동안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없다 1차 세계대전 무렵 비로소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여성참정권이 인정되기까지 수많은 여성들과 이들에게 동의하는 남성들의 희생이 있었다.

가장 극적인 여성 참정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영국에서 있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1792년 '여성 권리의 옹호'라는 책을 통해 여성의 선거권을 처음 주장한 후 100여년이라는 긴 시간 처절한 투쟁이 이어졌다. 경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엡섬더비에서 여성 참정권의 문을 열게 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1913년 6월 4일 엡섬더비에서 왕실을 비롯한 귀족들이 참여해 경마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장 큰 경기에서 왕 소유의 경주마인 '앤머'가 마지막 코스로 들어설 때 갑자기 한 여성이 경주로에 뛰어들었다. 시속 60를 달리는 앤머는 갑작스런 여성의 등장에 놀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여성은 말발굽에 짓밟혀 나뒹굴고 기수는 말에서 떨어졌다.

이 여성이 바로 여성참정권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이다.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유능하고 자의식 강한 여성이었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죽기 전에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이란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장례행렬에 수많은 여성이 모여 들어 그녀의 뜻을 기렸다. 그의 죽음이 후 15년이 흐른 뒤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죽음으로 여성의 참정권을 쟁취한 이 여성은 지금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고 있다.

2009년 쿠에이트에서 열린 선거는 세계가 주목했다. 2005년 처음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도입된 후 열리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 선거에서 47년 쿠웨이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네명의 여성이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여성의 참정권이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 레바논은 초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미얀마는 1922년, 에콰도르는 1929년에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운동은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피를 통해 발전해 가고 있다. 우리의 무관심으로 고귀한 피를 헛되이 해서는 안된다. 한사람의 투표는 확실히 세상을 변화시킨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일 아침이다. 짜릿한 첫키스처럼 새로운 세상을 투표로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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