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책임지는 사람을 원한다
시민은 책임지는 사람을 원한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4.09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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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취재1팀(부장)

한마디로 세상이 무섭다. 물리적 약자인 여성이기에 더 무섭다. 한순간 여성이란 존재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 과연 내 옆에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는 수원 20대 여성 살해사건을 접하면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느낀 공포일 것이다.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사회적 충격파를 던져주었다. 20대 여성이 낯선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신고한 순간부터 싸늘한 주검으로 세상에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은 알면 알 수록 분노가 치민다. 안일하게 대처하는 사건 현장과 허술한 치안, 책임전가식 사태수습을 보며 지금의 우리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112장난신고가 많은 탓이라고 말한다.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않으니 위기상황에서 조차 장난으로 취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 핑계에 불과하다. 장난전화 목소리와 죽음의 순간 절박한 목소리가 같을까 말이다. 그 절박함을 외면한 이유로는 너무 유치하다.

여기에 신고전화를 받고도 늑장 대응한 경찰과 위치추적의 미스도 논란거리다. 숨진 여성이 알려준 납치장소를 무시하고 주변이나 더듬는 사이 꽃같은 목숨이 비참하게 사라졌다. 그것도 토막으로 잔인하게 말이다. 죽은 이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그럼에도 경찰은 숨진 여성과의 전화통화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위치 추적이 어려울 정도였다는 통화는 1분 30초로 늘었다가 4분으로 늘어났음에도 말이 오락가락한다. 더구나 112신고 후 6시간이 지난 새벽 5시에 살해했다는 범인의 자백에선 모두가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공포에 떨며 범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다 듣고서도 나몰라라 외면한 꼴이 되었다. 누가 한 사람의 목숨을 책임질 것이고, 누가 한 가족의 가슴 속 한을 책임질 것인가.

가해자 오씨의 신분도 이번 사건을 단순히 바라볼 수 없게 한다. 조선족인 오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입국해 막노동을 해왔다고 한다. 한달에 200만원가량을 벌어 중국에 사는 가족에게 붙여주는 가장이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이번 사건은 보통 사람이라곤 상상할 수 없다. 20대 여성의 시신이 너무 많이 훼손되어 가족들에게 얼굴만 보여주고 입관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화장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조선족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라는 분석이다. 이들의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는데는 빈곤층으로 살아야 하는 울분과도 관계가 깊다. 계급사회에서 살던 인식이 자본주의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면서 상대적으로 가진 자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내 체류자들에 대한 검열을 강하게 어필하는 일부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지만 자칫 체류자들을 압박하는 또 다른 논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내심 우려도 된다. 하지만 이런 파편적이고 불필요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또한 사건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철저한 시스템 운용을 갖춰야 한다.

온 국민이 이번 사건에 흥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내 문제점을 정확히 가려내고, 이에 걸맞는 올바른 책임을 져야 한다.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른다는 이 막연한 두려움을 제거해주는 것이 바로 시민이 원하는 정부의 역할이자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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