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삼국지
다시 읽는 삼국지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3.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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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내가 삼국지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성적이 바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몰래 숨어서 읽어봤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그 책은 굉장히 두꺼웠고 2단으로 인쇄되었으며 제목은 '연의삼국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 재미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삼국지에는 수많은 장수와 모사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유비, 장비, 관운장 그리고 제갈공명 등 네 명이다. 무너져가는 한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이들이 기상천외의 작전으로 이웃나라와 벌리는 싸움이야기이다. 그때 내가 그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 이었다.

시골에서 짚신이나 삼던 백년서생 빈털터리에 아무기반도 없는 주인공 유비가 비록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촉나라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사람을 잘 만났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다.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은 용장 장비와 관운장 그리고 삼고초려를 통해 구한 천하의 명재상 제갈공명 등. 이들 세 사람이 없었다면 황제의 자리는 유비에게 이룰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은 다음 나는 내 성적이 이렇게 형편없는 것은 순전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되는 괴변을 지껄였던 아주 한심한 철부지였다. 그로부터 45년이 경과한 2012년 2월에 전 10권으로 된 소설 삼국지를 다시 읽어봤다. 두 번째 읽으면서는 어려서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되었다.

행간 속 인물들의 뛰어난 계책, 처신, 술수를 머릿속에 그리며 올바른 공직자의 길, 삶의 지혜를 깨달으며 삼매경에 빠졌었다. 내가 제일 감동받은 인물은 조자룡이었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지만 그는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면서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언제나 선봉에서 자기 몫을 다한 훌륭한 장수였다. 특히 75세 때 그의 마지막 전투로써 위나라 사마소와의 싸움에서 젊은 장수를 제치고 선봉장으로 활약하며 최선을 다해 대승을 거두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한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과연 나는 공직의 마지막 길목에서 이렇게 최선을 다하며 열정을 쏟아 일하였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삼국지의 백미는 속임수와 반전이다. 세상사는 모두 속임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백성 속이지 않는 나라 없고, 나라 속이지 않는 백성 없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불변의 진리라고 하였는가?

TV에서 저녁뉴스를 보며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아무개를 소환해 아무개와 대질을 하게 되면 곧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라는 취재기자의 멘트를 들었다.

속임수는 삶의 지혜이자 살아가기 위한 필수 생존전략이다. 온갖 식물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동물을 속이고, 동물들은 다양한 보호색으로 천적을 속인다.

정치가는 정책으로 국민을 속이고, 예술가는 작품으로 관객을 속이고, 교육자는 지식으로 제자를 속이고, 성직자는 신앙으로 신도를 속이고, 오늘도 나는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아내를 속인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끈임없는 속임수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것이 세상사는 이치이니 이런들 어찌하고 저런들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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