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母情)
모정(母情)
  • 이효순 <청주 덕성유치원 원장·수필가>
  • 승인 2012.03.1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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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청주 덕성유치원 원장·수필가>

자꾸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나를 시집보낼 때도 이렇게 우셨을까? 큰아이 장원이의 출국을 며칠 앞두고 아쉬움에 안절부절 못하며 지냈다.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귀국해 함께 지내다 터미널에서 헤어지고 나니 마음이 아렸다. 출발시각 전에 사진도 찍고 수선을 피워 보았으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마 사랑해' 나를 포옹한 후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큰아이는 공항 가는 버스에 올랐다.

장원이를 보내고 돌아서니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둘째가 함께 주차장에서 나오며 내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형이 취업해서 가는데 집에서 함께 있는 것보다 좋지 않으냐?"라며 나를 위로했다. 6개월의 긴 기다림 속에 취업비자로 출국하게 된 것인데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그러나 헤어짐은 섭섭했다.

장원이는 쌍둥이로 3분 먼저 태어나서 형이 됐다. 그 짧은 순간도 출생 순서에 따라 두 동생의 형으로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셈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모두 교회 가고 나면 현관출입문에 야구방망이를 가져다 세워놓고 집을 지켰다. 시간이 지나 동생 둘이 잠이 들면 졸음을 참고 형이기 때문에 어른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함께 생활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안다더니 장원이를 보내고 돌아오며 줄 곳 친정어머니를 생각했다. 내가 초임지에 발령받았을 때 아버지와 함께 딸을 산골마을에 두고 가시며 참 많이 우셨다. 해가 질 무렵엔 어머니 생각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나도 교무실 책상에서 엎드려 많이 울었다. 그때 어머니 마음이 어떠했는지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 눈물에는 상대방의 따뜻한 정이 함께 녹아 있어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것 같다.

큰아이는 미국에서 오랜 학업생활 끝에 처음으로 직장을 따라가는 것이라 더 애틋했다. 우리 집안의 맏아들로서 타국에서의 어려운 여건들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야 하는 책임을 실어 보냈다.

장원이는 몇 달 동안 식구들과 생활하며 정이 많이 들었다. 내가 해 주는 반찬이 맛있다고 먹을 때마다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하긴 긴 세월 이국 생활을 했으니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먹었을까? 봄에 나온 돌나물과 신선한 쑥국, 냉잇국, 백김치, 초절임 등을 좋아했다. 나는 때때로 남편에게 소홀했던 반찬준비도 큰아이 때문에 더 신경을 쓰곤 했다.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어른들 셋이 무덤덤히 생활하던 중에 큰아이로 인해 얼마동안이지만 가정에 활기가 돌았다.

귀가해 2층에 올라가 보았다. 큰아이가 떠나간 빈방에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장원이의 흔적이 보인다. 옷가지와 가재도구들, 전원을 내린 보일러, 방바닥도 냉기가 돌았다. 장원이가 공부하던 책상 앞에 앉아 보았으나 마음의 한 곳이 허전했다. 아침 출근시간과 저녁 귀가시간에도 큰아이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모정(母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담장에 있는 인동덩굴에 새순이 트고, 뜰에는 튤립과 히아신스 싹이 올라오고 있다. 뜰은 긴 잠에서 깨어 봄을 맞이하고 있다. 장원이도 이국(異國)에서 봄처럼 어미 정(情)을 자양분으로 삼아 싱그럽게 뻗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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