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아름다움
곡선의 아름다움
  • 강희진 <한국문인협회 음성군지부장>
  • 승인 2012.03.1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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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한국문인협회 음성군지부장>

수필집을 출간하려고 글 스승님께 발문을 부탁드렸다. 얼마 후 보내 주신 글을 보니 나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계시는 느낌을 받았다. 10여년이 넘는 동안 옆에서 나를 지켜봤으니 오죽 잘 아실까마는 무엇보다 마음을 치는 것은 나를 일컬어 직선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곡선의 아름다움도 간과하지 말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글을 맺고 있었다.

며칠 후 아는 시인께 표사를 부탁드렸더니 내 글은 에둘러 가지 않는다고 했다. 쌩얼과 날것이라 했고 내 자신을 온전히 품고 있다고 했다. 이것 또한 직선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풀어서 말하면 부드럽지 않다는 것이고 직설적이라는 말이고 무미건조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지만 나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멋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하루도 버리지 않고 살았건만 유감스럽게도 직선이라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듯하다. 늘 '강해 보인다. 똑소리 난다. 당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사람 좋다는 말이나 우아하고 부드럽다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강하고 당당한 건 좋지만 누군가 나를 볼 때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결국 모나고 똑부러지는 직선의 맹점만 갖추고 살아온 게 아닐까 싶다.

곡선과 직선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전통한복도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빛을 발하고 버선코도 우아한 곡선으로 인해 진가를 발한다. 꼬부랑 오솔길도 곡선이기에 운치가 있다. 반면 아파트와 빌딩숲은 직선이다. 문명의 이로움을 느끼고 살고 우리도 다 그 안에서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시원한 고속도로는 우리에게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줬고 직선의 컴퓨터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가 한순간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핸드폰도 직선이다.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직선의 이미지는 명쾌하고 빠르고 강하지만 우리에게 휴식의 안락함은 주지 못한다. 직선을 좋아하는 나 역시 빈틈없이는 보일지언정 곡선의 편안함을 주지 못할 때는 지성과 예지도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지난번 오래 된 제주도의 전통가옥을 본 적이 있다. 특별히 지붕의 곡선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아파트와 주택단지가 많이 들어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끼줄로 묶은 둥그런 지붕이었다. 태풍이 지나갈 때를 대비한 지붕의 형태를 보면 가히 바람에 맞설만하지 싶다. 묶여 있기도 하지만 둥글린 모서리 때문에 바람을 덜 타는 것으로 보았다. 지붕이 모나게 만들어졌다면 바람에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의미다. 둥글어야 바람을 덜 타고 무사할 수 있다는 점은 예사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조급하고 냉정한 성격 그대로 직선을 고집하면서 산다. 지금부터라도 나를 둥글리면서 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혼자만 우아한 척 부드러운 척 하며 살아 온 게 새삼 부끄럽다. 누군가 둥그런 나를 본다면 편하기도 할 것이며 나 자신이 피곤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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