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봐요?
시험 봐요?
  • 이제현 신부 <매괴여중·고 교목>
  • 승인 2012.03.1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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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 신부 <매괴여중·고 교목>

얼마 전 인터넷에 학생들이 공부할 수 없는 이유가 1년이 365일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주일, 법정공휴일, 뜨거운 여름, 수면, 식사, 잡담 등의 기본적으로 쉬어야 할 시간들을 빼고, 365일 가운데 공부할 수 있는 날을 계산해 본 것이었습니다. 365일 중에 며칠이나 공부할 수 있을까요? 그 계산법대로 하면 딱 하루가 남습니다. 그리고 그 하루마저도 자신의 생일이어서 결국 1년에 공부할 날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논리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꼭 쉬어야 할 시간도 마다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공부를 무거운 '학업(學業)'으로 대할 뿐,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수업시간에 만나고 있습니다. 1학년 때 그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장래희망을 책상 앞에 명패처럼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명패를 보며, 삶의 목표가 뚜렷한 학생들이 대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학생들의 책상에 명패는 온데간데없고, 문제집만 잔뜩 쌓여 있습니다. 이상(理想)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입시(入試)'라는 현실의 무게만 뚜렷이 느껴집니다. 첫 수업시간에 새로운 기대와 열정이 사라진 질문을 올해도 들었습니다. "시험 봐요?"

시험하면 저는 천주교의 성인 중에 우리 고장 출신 황석두 성인을 생각해 봅니다. 여느 양반처럼 성인은 스무 살 때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주막에 들어가 묵는 중에 천주교 신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교리를 듣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냐고 묻자, 이미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면서 천국 시험에 합격한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인이 아니었던 가족들로부터 이해받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성인은 순교로써 신앙을 지켰고, 지금은 우리나라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분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만 있었지만, 사회가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요즘에는 시험도 가지각색입니다. 일정 수준의 능력과 기술을 인정받는데 시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교육평가가 학습의 개선보다 결과의 측정과 비교에만 치중해, 정작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보다 등수놀이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시험을 통과했을 때 높은 점수를 맞아, 다른 친구보다 잘한 것에 기뻐하기보다, 황석두 성인처럼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다운 사람이 된 것에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워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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