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학교폭력
엉뚱한 학교폭력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3.08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학교폭력 실태 전수 조사 설문지가 집안에서 돌아다니기에 읽게 되었다.

전수 조사라는 어려운 말을 학생들이 알지도 모르겠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설문조사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협조 아래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없다고 성의 없게 설문에 답했다. 그러나 마지막의 학생 의견란에는 '경찰 연계'라고 써놓아 뭔가를 생각하게 했다. 학교폭력은 교사가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경찰이 그 책임을 져야 할 정도로 심각하구나, 어쩌면 그것이 교사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학교폭력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선다. 처음부터 경찰이 개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고, 벌점, 학부모소환 등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에는 경찰에 넘겨버린다. 경찰은 폭력학생을 나름의 서순에 따라 공원청소 등 봉사활동을 시키면서 교화에 협조한다. 폭력은 범죄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부모의 폭력조차 경찰이 나설 정도니, 학교폭력에 경찰이 나선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가족이나 학교를 넘어서 조직을 가진 경찰이 할 역할이 있다는 판단이다.

우리의 학교폭력도 이미 가족이나 학교를 넘어서고 있다는 고등학생의 판단은 나를 서글프게 했다. 부모의 말도 안 듣고, 선생님의 말도 안 들으니, 이제는 힘센 공권력으로나 제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리의 청소년의 비행에 시민이 선뜻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학생들의 폭력에 무력을 휴대하거나 사법권(법을 집행할 권리)이 있는 경찰이 나설 수밖에 없음을 반증한다.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설문을 보고는 더욱 놀랐다. 최근 1년간 당한 학교폭력 피해를 복수 응답하랬더니, '말로 하는 협박이나 욕설', '강제 심부름과 같은 괴롭힘', '손, 발 또는 도구로 맞거나 특정한 장소 안에 갇힘(상해, 폭행, 감금)'에 표시를 해놓은 것이었다. 다음 질문은 어떤 곳에서 당했냐는 것이었는데, 그 답이 '교실, 운동장, 화장실 또는 복도, 그 외 학교 내 장소, 기타(과학실)'이라고 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일진회 같은 폭력 서클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예'에 표시를 해놓았다.

아니,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맞고 다녔다는 생각에 놀랐다. 거구에 가까운 아이가 맞고 다닌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자세히 읽어야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적는 난에는 이렇게 적었다. '시끄럽다고 하면서 몽둥이를 휘두름. 복도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머리를 때림, 발이 아프다고 하니 발을 참.'

아이를 불러 차분히 물었다. 덩치 큰 너도 이렇게 맞고 다니냐고. 누가 그렇게 때리냐고? 그랬더니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때리잖아!'

자세히 보았더니,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었다고 선생님이 몽둥이를 휘둘렀고, 복도 정리를 잘못했다고 머리를 쥐어박았고, 체육시간에 다친 발이 아프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아프긴 뭐가 아프냐고 오히려 발로 차더라는 이야기였다. 그제서야 학교폭력을 줄이거나 방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학생의 의견란에 '선생님부터 그만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주장이 이해가 갔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 일이지만, 학생들은 폭력의 주범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