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창가에서
봄이 오는 창가에서
  • 김종례 <보은 회남초 교감>
  • 승인 2012.03.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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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종례 <보은 회남초 교감>

얼마 전 재래시장 옆을 지나다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꽁꽁 얼어붙은 길바닥 가장자리에 각종의 봄나물들이 소쿠리와 양품그릇 안에서 행인들을 올려다보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캄캄하고 차가운 얼음판만을 걸어갈 줄 알았는데 봄 너울을 곱게 쓴 고운 햇살들이 우리 주변을 이리저리 맴돌며 기웃거리고 있다.

점심식사를 마치면 대청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본관 현관에 모여서 봄 아가씨가 어디쯤 오시는지 궁금해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요즘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정 아래 호수를 내려다보니 수정처럼 반짝이는 수면위로 낚싯배 한척이 미끄러지듯이 물결을 헤치고, 늙은 어부 투망질로 선잠 깬 은어들의 투정어린 몸짓이 눈앞에 가물거린다. 그 너머 수로산 봉오리들은 반쯤 풀린 대청호에 잔설이 얹힌 전라의 모습을 물구나무로 서서 아직은 새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아쉬운지 도도하게 웃고 있다.

햇볕은 날이 갈수록 나른해지는 땅을 비집으며 현관 옆 잔디밭이나 교실 창가 깊숙이 터를 잡으려고 용을 쓴다. 보랏빛 제비꽃이 금새라도 방긋 웃으며 애교를 떨 것만 같아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학교 진입로에서 가장 먼저 웃어주는 산수유 가지에도 봄의 전령사가 사뿐히 걸터앉아 연인들의 발자국 소리를 은밀히 듣고 있다.

그런데 아지랑이는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시골길을 어쩌다 걸어 봐도 언제부터인가 아지랑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아지랑이의 신비로움을 과학적 탐구로만 이해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사막속의 신기루인양 마음을 홀리며 해지는 줄 모르고 산과 들을 헤매던 소꿉친구들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아지랑이처럼 문득 그립다.

겨우내 매운 햇살 그물에 걸려서 바르르 떨고 있던 손톱만한 새순 한잎을 양지바른 남쪽 창가에 놓아주었더니 아이들보다 봄바람이 먼저 와서 치근대고 있다. 교실안의 아이들도 어느 때는 한잎의 새싹처럼, 어느 때는 한송이 꽃처럼 마음을 끌고 가는 적이 있지 않는가! 잘 길들여진 양떼들처럼 온종일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점심시간에도 햇볕 가득한 운동장으로 나올 기미가 전혀 없다.

우리의 어린 시절엔 학교가 끝나면 몇명씩 짝지어 산과 들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자연을 습득하던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바람처럼 꽃잎처럼 자유를 맘껏 누리던 하염없이 행복한 유년이었다.

오늘날 학교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며 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기에 아이들의 가슴은 작고도 작아 벅차고 숨이 차오른다. 처음과 끝이 어디쯤인지 가늠하여 아이들에게 시간의 여유를 주고 시행착오를 허락해 주는 여유만만의 교육체제가 마냥 아쉽다.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나름대로 그리기 시작한 미완성 그림을 존중해 주고, 아름답게 완성하도록 교사와 학부모는 오직 격려하고 응원해 줘야 할 것이다. 마음의 봄이 돌아와 움트고, 순이 나오고, 꽃이 피어서 인성과 지성의 열매가 주저리주저리 열린다면 교육 삼위일체의 만족도가 덩달아 높아져서 다 행복한 학교문화 조성이 앞당겨질 것이라 사료된다.

올해도 봄이 오는 창가에서 한해의 교육계획에 동분서주할 모든 선생님들과 새학년을 맞은 자녀들을 다독거리기에 여념이 없을 학부모님들의 창가에도 새봄이 싱그럽게 안겨오길 기원한다. 오늘 저녁 식탁에 올려 질 물기어린 봄나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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