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세태
씁쓸한 세태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2.03.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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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들판의 곡식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농부가 논으로 자주 나간다는 것은 알알이 영근 수확을 위한 관심인 것이다. 곡식들이 잘 자라게 잡초도 뽑아주고 물의 양도 조절하면 벼들도 병충해를 이겨내 농부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무럭무럭 자라는 것만 같아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관심이 너무 지나쳐 마마보이로 키우는 것은 안되겠지만 무관심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 1등만을 위해 사람을 로봇화시켜 가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곡식들을 위한 농부의 관심처럼 어릴 때부터 사회적 윤리관과 인성을 잘 심어주어야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며칠 전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 있었던 일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하는데 예닐곱살 돼 보이는 아이 둘이 요란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식탁 위에 있는 물도 쏟고 식사 중인 사람 등에 엎어지기도 했다. 얼굴만 찡그리고 있을 뿐 누구 한 사람 나무라지를 않는 것이다.

너무하구나 싶어 "네 이놈, 조용히 해라. 여긴 밥 먹는 식당이지 너희들 놀이터가 아니야. 밥 먹는 사람들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 있어라." 그러자 아이들이 기다렸단 듯이 큰소리로 울었다. 그때 아이들 부모로 보이는 큰 덩치의 사람이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며 "여보시오. 애들 장난 좀 치는 걸 가지고 뭘 그래요. 크는 아이들 기죽게. 간섭하려면 당신 애들이나 잘 가르쳐요."

요즘도 저런 부모가 있나? 갑자기 멍해지면서 할 말을 잃은 순간 울던 아이들이 물 흐리는 미꾸라지같이 다시 파닥거리는 걸 보며 저 덩치의 겁에 질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자라처럼 목을 쏙 넣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구나 싶었다. 아이들 잘못을 지적해 주면 고맙다, 감사하다, 죄송하다는 말은 못해도 애들 기죽인다는 아이들 부모, 오히려 당당한 저 모습 앞에 무슨 사족이 필요할까.

자기 자식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지 심히 걱정이 앞서지만 나 또한 욱하는 성실이 발동할까 꾹 참으며 목을 쏙 넣는 나도 한심하다 못해 부끄럽게도 더 큰 문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기 위주로 학습되어 저렇게 자라난 아이들(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잘못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인지는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현시대의 자화상이고 보편화된 추세인지 모른다.

남의 일이다. 남의 자식이다. 뒤가 두렵다. 귀찮다. 그냥 모르쇠로 나만 편하면 된다는 게 지금의 세태이다. 몸도 약해지면 병이 들 듯 모두가 잘못에 대한 관심의 불을 끄고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움츠린 틈을 타서 요즘 '묻지마' 범행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교통사고를 낸 뺑소니차를 봐도 오라 가라는 게 싫고 혹여 가해자의 뒤가 두려워 못 본척하며 입을 굳게 닫고 사는 이 사회, 너무 삭막하고 앞날이 불안하다. 옆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이런 불상사는 없을 것인데 무관심이 거미줄처럼 쳐져 있는 것이다. "도둑이야"하면 무서워 나서는 사람이 없어 오죽했으면 "불이야"로 소리치면 옆집 사람이 나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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