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야기 夢
시오야기 夢
  • 김동진 <전 언론인>
  • 승인 2012.03.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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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동진 <전 언론인>

주말에 서울에 사는 의제(義弟) 가족 4명이 청주삼겹살을 먹으러 왔다. 청주 시오야기(時午夜氣)는 부부들의 로망이라 했다. 경춘도로를 타고 춘천에 막국수를 먹으러 갈까 하다가 청주에 사는 형을 볼 겸 해서 청주로 방향을 튼 것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 청주 인근을 둘러본 뒤 저녁은 삼겹살거리에서 먹고 일요일 오전 청남대를 들러 가겠다는 일정이었다.

동생 가족들과 서문동 삼겹살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이 오후 6시. 점심에 밀가루 음식을 먹은 터라 벌써 출출했다. 나도 우리 가족 4명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멀리서 오는 동생가족을 반기기 위해 미리 오느라고 왔지만, 이미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주변 여러 주차장엔 차를 대기도 어려웠다. 삼겹살 거리 입구에서부터 기름 타는 냄새가 시장기를 재촉했다. 어느 식당으로 안내를 할까 만수네, 딸네집, 고속주점, 대성집, 금순이은순이, 창미식당.

삼겹살 거리 유래비가 있는 입구에서 동생을 만나 캐노피가 쳐진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은 요란하지 않은 크기로 통일돼 있었고, 거리에 담배꽁초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의 악사들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어느 언저리를 도는지 풍물놀이패의 신나는 가락이 흘러나왔다. 초입 한 켠에서는 페이스페인팅을 하는 가족이 눈에 띄었다. 거리 한가운데에서는 필력 좋은 서예가들이 가훈을 써주거나 전각 도장을 새겨 주고 있었다.

식당들은 양돈협회와 협약을 맺어 국내 산 유기농 돼지고기만 취급하고 있었다. 소금에 구워먹는 곳, 간장에 담갔다가 구워먹는 곳, 생고기집, 고추장 삼겹살집, 벌집 삼겹살집, 목살구이집, 대패삼겹살, 인삼 삼겹살 등등. 삼겹살 종류가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새삼 놀랐다. LED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은 거리를 따라 한참을 가다 아무데나 골라 한 집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전국 어느 유명 식당거리를 가면 꼭 보이는 '원조'라는 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느 식당도 원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자리를 잡자 상추와 파절이, 깻잎, 묵은 김치, 통마늘, 고추와 함께 묽은 간장국물이 따라 들어왔다. 갖가지 그릇이며 수저, 휴지통에도 겉에는 하나같이 '직지'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가격은 어느 식당에서도 같아 국내산 삼겹살이 1인 분에 9000원, 다른 지역보다 1000원 정도 싼 값이었다. 간장에 푹 담갔다가 구워먹었는데도 전혀 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소주 한잔에 사는 얘기를 담아 삼겹살을 안주 삼아 먹다 보니 어느덧 8시, 우리는 8명이 8인 분을 먹었다.

동생네는 오전 서울에서 내려와 고인쇄 박물관을 찾았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을 둔 동생네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 직지가 바로 이곳 청주에서 발명됐다는 것이 신비롭다고 했다.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는 이름과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떨어지느냐며 신기해 했다. 바로 옆 공예관에도 들러 도자기로 만들어진 수제 부부찻잔을 한 벌 산 뒤, 수암골 김탁구 드라마세트장에 들러 기념촬영도 하고, 제빵 체험도 했다고 했다.

나오는 길에 삼겹살 거리를 한 바퀴 둘러 봤다. 거리에는 친구들, 가족들, 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물론 중국인, 동남아 근로자들, 햐얀 피부의 외국인들도 자주 목격됐다. 사방으로 뻗은 주변 골목을 따라 여러 종류의 먹자골목이 어우러져 있었다. 오른편에는 돼지 족발 골목이 조성돼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족발을 판매하는 식당 20여 곳이 성시를 이루었다. 왼편으로는 순대집이 줄을 서 있었다.

중앙공원까지 이어지는 골목 전체가 순대집으로 채워져 있었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밤샘 영업을 하는 해장국집들이 박혀 있었다. 삼겹살 거리 중간 중간에는 '직지'라는 이름이 예쁘게 새겨진 각종 공예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외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삼겹살 거리를 둘러본 동생네는 미리 예약해 둔 청남대 가족호텔에서 잠을 잔 뒤, 일요일 오전 청남대를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가겠다며 늦게 자리를 떴다. 잘 다녀가라고 손을 흔들려는 순간, 빵! 빵!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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