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반영
존중과 반영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03.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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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 지난해 12월 충남 천안시의회가 의정비 동결을 선언했다. 천안시 의정비 심의위원회가 결정한 7% 인상안을 그대로 밀어붙이려다 돌연 동결 결정으로 선회한 것이다.

겉으로는 경제난 등을 고려, 고통분담 차원에서 동결한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달랐다. 행정안전부가 의정비 심의위의 인상 결정이 위법하다고 제지한 까닭이다. 행안부는 천안시 등 의정비 인상을 결정한 수십 곳의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다. 지방자치법 34조 6항을 각 지자체 심의위가 지키지 않았다며 인상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적시했다. 이 조항은 심의위가 의정비를 결정할 때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 결과를 반영(反映)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천안시 의정비 심의위는 인상 결정에 앞서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주민 76%가 의정비를 동결 또는 인하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론 조사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인상 결정에 제동을 건 것이다.

지난달 27일 국회가 공직선거법 일부 법률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선거구를 1석 늘리고(세종시), 경기 파주와 원주의 분구, 경남 남해·하동과 전남 담양·곡성·구례 선거구를 폐지하는 게 골자다. 이는 애초 국회의장자문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권고안과 전혀 다르다. 선거구획정위는 지난해 국회에 인구가 증가한 8개 선거구의 분구와 줄어든 5개 선거구의 통·폐합을 내용으로 한 획정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 획정안을 국회는 무시했다.

선거구획정위의 활동 목적과 그 범위는 공직선거법 24조에 규정돼 있다.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의 공정한 획정을 위해 국회에 선거구획정위를 두고(1항), 획정위는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며(7항), 국회는 획정안을 존중(尊重)해야 한다(10항)고 규정했다.

△ '반영하다'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 가지가 나온다. 한자어 그대로의 뜻인 '빛이 반사하여 비치다'가 있고,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어떤 현상을 나타내다'와 '어떤 문제에 대한 여론이나 의견을 해당자에게 알리다' 등이다. 지방자치법 34조에 여론조사 결과를 (의정비 인상 결정에) 반영하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선 두 번째 뜻인 '영향을 받아 현상을 나타내다'란 의미에서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법전에서 초라해진 건 공직선거법 24조 10항에 나타나는 '존중'이란 단어다. '높이어 귀중하게 대하다'의 뜻인 존중은 앞서 지방자치법의 '반영'에도 못 미치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극상으로 귀중하게 대해져야 할 선거구획정위의 권고안이 무시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그것도 중대한 선거법-에 '존중'이란 단어가 이렇게 제 의미도 찾지 못하고 구속력도 없이 쓰인게 허탈하기만 하다.

천안, 수원, 용인 등 전국 곳곳 선거구에서 게리맨더링이 이뤄진 가운데 정치권이 선거구획정위를 독립기구로 만들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격이라는 비판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늦게나마 다행인 것은 선거구획정위를 의결기구로 독립시켜 국회가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획정위가 각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인사로 채워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위원들이 정파를 떠나 국회의원 선거구를 공정하게 획정,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다시는 없도록 해야한다. 차기 총선 때 이번에 만들어진 괴물 모양의 선거구가 재조정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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